[튀르키예/그리스 여행후기] ⑭코린토스 운하, 고린도( Corinth ) 유적지

-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인 코린토스 운하( Corinth Canal )
- 국제 무역 중심지이자, 사도 바울의 그리스 마지막 전도지인 고린도( Corinth ) 유적지

김범모 기자
2024년 11월 11일(월) 16:11
[ 고린도( Corinth ) 유적지 ]
[한국시사경제저널]

■ 코린토스 운하( Corinth Canal )

코린토스( 고린도 ) 운하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본토를 연결하는 운하로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이다. 코린토스 운하는 에게해 사로니코스만과 이오니아해 코린토스만을 연결해 주는데, 펠로폰네소스반도는 그래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이오니아 해와 에게해를 가장 짧은 거리로 연결할 수 있는 이 지역에 운하를 만들면 해상운송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라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 때부터 있었다.

기원전 7세기에는 운하 대신에 배를 육로로 옮기는 디올코스( Diolkos )라는 궤도를 만들어 마차로 선박을 이동시켰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도 운하를 만들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기술 부족과 막대한 비용 문제 등으로 운하 건설은 하지 못했다.

1800년대에 그리스 독립 후 운하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해, 1893년 헝가리 기술자 이스트반 티르스( İstván Türr ) 주도로 완공이 되었다.

코린토스 운하를 이용할 경우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돌아가는 것보다는 700킬로 정도를 단축시켜 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운하 길이 6.4km, 폭 21.3m, 깊이 8m의 소규모 운하로 대형 선박이 통과할 수 없어 관광용 여객선 등 중소형 선박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 고린도( Corinth ) 유적지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아덴(아테네)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전도지인 고린도에 온다.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천막 만드는 일을 같이 하면서,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한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무려 1년 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 사도행전 18장 1절, 11절 )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연결하는 지협에 위치해 있고, 아테네와는 80km 정도 떨어져 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가 도시국가이던 시절 고린도는 아테네, 스파르타와 더불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기원전 146년에 로마에 점령되면서 철저히 파괴되었다가, 이후 율리우스 시저가 그리스 도시를 복구하면서 기원전 44년에 고린도 역시 복구되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니던 때에는 항구도시는 아니었으나, 서쪽 레카이온 항구와 동쪽 겐그레아 항구를 관할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펠로폰네소스반도와 그리스 본토 중 남부 지역을 관할하는 '아가야'의 수도가 바로 고린도였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이나 머물렀던 것은 고린도가 당시 아가야의 수도였고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도 많이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이방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타락하고 음란한 정도도 다른 도시들에 비해 심했을 것이다.


세상은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 문제가 많은 곳에는 해결사가 필요한 법이다. 바울이 생각할 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많았다는 것일 것이다.

또한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와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큼, 다양한 지역에서 오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을 것이다.

바울이 왜 아테네가 아니고,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이나 머물렀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로마 제국이 흔들리면서 고린도 또한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고, 오스만튀르크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작은 시골 마을로 전락했다고 한다.

작은 시골 마을마저도 1858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후 현재의 이스쓰모스 해협 부근에 새로운 고린도를 건설하였으나 이 지역도 1928년 지진으로 다시 파괴되었다.

지금 고린도는 유적지 옆에 새롭게 재건되었고, 3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도시이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이용했던 겐그레아 항구는 지금은 폐허가 되어 물속에 잠겼다. 그래서 일부 유적들만 남아 있고 발굴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한다.


♠ < 고린도 유적지 내 박물관 소장품 >

[ 목이 없는 조각상을 사전 제작 후, 주문이 들어오면 두상은 따로 제작해서 붙였다는 설이 있다 ]



[ 아고라에 위치한 큰 연단으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에 의해 고소당해 갈리오 총독 앞에 섰던 장소이다.(사도행전 18장 12절) ]

[ 사도행전 18장 12~17절 내용이 적혀있다 ]


< 사도바울 기념교회. 고린도 유적지와는 떨어져 있으며, 그리스정교회이다 >




To be continued...







[ 필자 소개 ]

김범모

국회 정책연구위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 박홍근 원내대표 정책특보, 문재인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서울외국환중개(주) 전무이사 역임.
현 광주 경제진흥상생 일자리재단 비상임이사.

( 본지 객원 필진으로 합류한 김범모 이사는 국회와 기업, 정당을 거친 실력있는 경제·재정 전문가입니다. 또한 최근에 텀블벅을 통해 ‘소시민이 사는 법 – 시장으로 간다’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합니다. )



김범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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