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장면 Frames of Architecture' 전시포스터 |
《건축의 장면》은 서울시립미술관의 2024년 전시 의제인 ‘건축’을 영상매체를 통해 소비 대상으로서의 건축물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로서의 건축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공간예술로, 영상은 시간예술로 분류하지만, 건축과 영상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으며 두 영역 모두 ‘공간성’과 ‘시간성’을 중요한 속성으로 공유한다. 건축에서 시간성은 공간 안에서 이용자의 동선과 경험을 설계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반대로 영상에서는 화면에 보이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퀀스의 연결을 통해 기억되는 것들로 하나의 감각적인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특히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카메라의 눈으로 경험하는 공간은 보는 이에게 건축을 새로운 역동성으로 전달한다.
유명 건축물이나 건축가에 대한 영상은 배제함으로써, 사진으로 남기거나 방문해봐야 하는 소비 대상으로서의 ‘건축물’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창(frame), 즉, ‘관점’과 ‘태도’로서의 건축에 주목하며 건축에 대한 확장된 사고를 유도한다.
영상 제작 주체를 건축가(혹은 건축 이력의 아티스트)와 미술 작가로 한정해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만들어지는 시선의 교차를 확보하고자 한다. 전시는 건축과 연결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참여 작가 8명(팀)의 영상과 조각 등 작품 15점으로 소개한다.
모스 아키텍츠(MOS Architects)는 뉴욕 기반의 건축 스튜디오로 실제 건축물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축을 둘러싼 환상, 사유들을 상상하고 실험하며 건축 활동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이번 전시작 '로맨스 오브 시스템즈'는 모스의 영상 작업 중에서도 이들의 건축적 주제 의식과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영상을 포함한 모스의 엘리멘트 하우스(Element House) 프로젝트 전체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됐다.
박선민은 초기부터 사진, 공간설치, 영상, 출판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하며 건축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버섯의 건축'은 생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상징하는 '버섯'과 인간 혹은 인류 문화를 상징하는 '건축'과의 연결을 시도하며 건축에 대한 다층적인 사유와 감각을 이끌어낸다.
시각예술가인 박준범과 건축가인 이윤석은 두 작가 모두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지만 대상을 바라보고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드러낸다. 박준범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 도시에 초점을 맞추면서 화면 구성에 있어 사진이나 퍼포먼스, 회화적 요소를 가미해 순수미술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반면 이윤석은 건축에 있어 한국성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오랜 건축계의 고민을 바탕에 두고, 서양의 건축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게 된 서울의 모습을 포착해 대중과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유튜브 영상의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듀오인 베카 & 르무안은 본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중, 전통적 영화에 가장 가까운 형식의 작품을 선보인다. 건축가로의 이력을 가진 베카와 사진, 영화이론을 공부한 르무안은 두 사람의 공동작업을 통해 일반적인 '건축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들의 작품은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건축을 매개로 사람들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오슬라비아 - ‘과거의 미래’가 잠자는 동굴'은 로마의 국립21세기미술관(MAXXI)에 소장된 작품이다. 한편 2016년 베카 & 르무안의 필름 16점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바 있다.
홍범은 기억 속에 파편적으로 남아있는 공간을 재구성해 가상의 심리적 공간을 구축한다. 홍범의 공간은 특정한 시간성과 장소성을 초월함으로써 의식의 저편에 자리한 깊은 내면의 공간을 그려낸다.
시각예술가 박윤주와 건축가 정준우로 구성된 보비스투 스튜디오 역시 가상의 공간을 선보이는데, 이들은 영상미디어의 언어를 통해 건축의 질량과 질감에 대한 새로운 신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각각 한국과 핀란드 국적을 가진 나나와 펠릭스로 구성된 아티스트 듀오 나나와 펠릭스는 현대사회에서 건축적 행위가 주로 발생하는 공간인 '도시'의 풍경에 주목한다. 이들은 도시개발, 발전지상주의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인간이 만든 도시 속에서 그 나름의 '발전의 미학'을 찾아낸다.
전시 제목《건축의 장면》은 건축의 다양한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동시대 건축의 다각적인 고찰을 유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공간에서 신체를 이동하며 포착한 하나의 순간을 필름의 한 프레임(컷)이라 가정한다면, 시공간에 대한 일련의 총체적 경험은 이 프레임들을 연결해 만든 한 편의 영상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본 전시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일상의 공간 속에서 맺어지는 관계들에 대해 질문하고, 나아가 각자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장면을 포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전시의 영문 제목에서 프레임(frame)은 영상에서 초당 프레임(fps-frames per second)이라 사용되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영상의 물리적 최소 단위를 의미한다. 나아가 인류의 삶과 문화의 틀(frame)을 짓는 매개체로서 건축의 특성을 의미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건축을 건축물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사유의 틀로 보고 다양한 작가들의 시선을 공유하는《건축의 장면》전시가 동시대 건축에 대한 이해의 확장을 꾀하고 나아가 관람객들에게 건축적 상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24년 전시 의제인 ‘건축’과 관련해 개최하는 마지막 전시로, 앞서 ‘건축’ 의제를 다루는 전시 3개(《시공時空 시나리오》, 《길드는 서로들》,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가 순차적으로 개최된 바 있다.
정진호 기자 jsak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