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헌법재판소 재판 장면.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 |
헌법재판소가 미루고 또 미루던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드디어 4월 4일로 확정했다. 작년 12월 14일 탄핵 소추 일로부터 무려 111일 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63일)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92일)과 비교할 때, 헌정사상 최장이자 늑장 재판이라 할 수 있다.
도무지 기약 없이 지연되는 재판 일정 때문에, 그동안 폭발 직전 국민 분노와 비례해서 헌재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는 급격히 추락한 상태이다.
■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난 헌재에 대한 국민 불신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이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2025년 3월 4주 NBS 전국 지표조사 결과, 헌재 탄핵 심판 과정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불과 1주일 전 60%에 비해 7%나 하락, 53%를 기록했다.
![]() |
[ 탄핵 심판 과정 ‘신뢰한다’(53%).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3월 24~26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조사. 휴대전화 가상번호(100%) 이용한 전화 면접조사. 응답률: 18.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3.1% ] |
반면에 1개월 전인 2월 4주 조사에서 탄핵 인용 64%, 기각 28%였던 예상치에서 3월 4주 조사에서는 탄핵 인용 51%, 기각 39%로 기각예상치가 11%나 상승했다.
특히 3월 1주까지 28%였던 탄핵 기각 예상이 3월 2주 이후 30% 넘는 결과를 보인 것은, 과거 사례와 비교할 때 최소한 3월 14일까지는 헌재 심판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국민 대다수 예상을 깬 결과로 해석된다.
![]() |
[ 전국지표조사(NBS) 조사, 헌법재판소 윤석열 탄핵 결과 예상. 탄핵 인용 51%, 기각 39%. 휴대전화 가상번호(100%) 이용한 전화 면접조사. 응답률: 18.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3.1% ] |
지금 헌법재판소 윤석열 탄핵 심판 과정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절반 가까이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헌재 재판관들은 도대체 알고나 있을까?
■ 헌법재판소 재판 과정 외부 유출 흑역사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 “뭔가 지금, 정보가 새는 거 아닌가요? 정보 새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처장님? 답변해 보십시오”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 : “그런 사실은 추호도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 “없다고 믿어도 되죠?”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 : “추호도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 “추호도 있는지 없는지 한 번 볼까요? 윤상현 의원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3월 21일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 하면서, 자기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한덕수 총리(탄핵 재판 결과)는 7대 1이다. 3일 전에 7대 1을 맞췄네요?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정보 안 새는 거 맞아요?”
윤석열 탄핵 심판 기일이 결정되기 하루 전인 지난 3월 31일, 국회 법사위 장면이다.
한덕수 총리 탄핵 심판 결과 7대 1 기각을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족집게처럼 정확히 맞췄다. 보안이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무색한 상황이다. 그래서 재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는 의혹과 함께,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는 ‘내통설’이 확산되고 있다.
헌재 구성원 중 누군가가 재판 정보를 유출한 은밀한 정황을 지금 당장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과거에 헌재 재판 과정이 외부로 유출됐던 ‘흑역사’ 사례는, 불행하게도 수도 없이 많았다.
1988년 9월 1일, 헌법재판소법이 시행되면서 헌재의 첫 출발이 시작됐다. 그리고 1989년 7월 14일, “사회보호법 5조 1항 보호감호 조항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위헌제청 1호 선고가 이뤄졌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 1호 사건에서부터 헌재 재판 정보 외부 유출은 시작됐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1980년에 신설된 사회보호법 ‘보호감호 조항’ 때문에 79세 노인이 1,000원 상당 절도를 저지르고 동종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보호감호 7년 판결을 받는 기막힌 사건이 벌어졌다.
보호감호 조항이 지닌 법적 강제력 때문에, 담당 판사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국민 여론이 들끓고 비판이 확산됐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은 위헌 제청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국회 역시 소극적으로 방관만 했다. 그러자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맡고 있던 조영황 변호사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보호감호 조항때문에 감옥에 갇힌 한 피고인을 설득해서 법원에 위헌 제청 신청을 했다. 그리고 당시 대법원 이회창 대법관이 11월 18일, 위헌 제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헌재는 뜨거운 토론 끝에 위헌 결정을 굳히고 선고일까지 결정했다. 그러나 결론이 사전에 유출돼서 법무부가 로비에 나섰다. 그래서 3월에 진행하려던 선고일은 두 번이나 연기됐고, 3월 25일 정부가 국회를 통해 사회보호법을 개정하고 필요적 보호감호를 폐지하는 조치를 전격 단행했다.
결국 법이 개정돼서 심판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4월 17일, 무기력하게 ‘각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화려하게 출발한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던, 위헌 제청 1호 사건의 매우 불편한 진실이다.
1990년 10월 15일, 법무사법 시행규칙 선고를 앞둔 시점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정보 유출이 이뤄진 정황을 확신하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고, 결국 재판관 한 명이 결정문을 미리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외부 유출을 또 다른 유출로 대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초기 헌법재판소 풍경이었다.
1992년에는 외부 유출이거나 도청을 의심할 만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다음은 당시 내무부에서 작성했던, ‘헌법소원 관련 헌법재판소 동향’이라는 제목 문건 일부이다.
‘제2차 평의회 시 재판관 9명 중 조규광 소장 · 김양균 · 김문희 · 한병채 · 황도연 · 김진우 등 6명, 정치권에서 자체 해결토록 결정 유보 의견 제시’
‘변정수 재판관, 더 이상 판결 지연시킬 경우 주심 포기하겠다고 항변’. ‘제3차 평의회에서 판결 여부 결정키로 합의’
헌재 정보 유출의 또 다른 극적인 사건은 1995년에 있었다. 헌재는 95년 11월 23일, 내부적으로 5·18 관련자 전원에 대한 검찰 불기소를 일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11월 24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갑자기 ‘5·18 관련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그래서 청와대가 헌재 불기소 취소 결정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는 의심이 파다하게 퍼졌다. 언론은 헌재가 당시 계산했던 공소시효 완성 시점이 언제인지까지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2008년 11월 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종부세 위헌 심판에 대해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는 “헌재와 접촉을 했습니다만 확실한 전망은 할 수 없습니다. 일부는 위헌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이라는 발언을 했다.
기타 헌법재판소 재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일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정확한 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사람은 사전에 결론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외부에 알릴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결국 헌재 구조상, 핵심적인 재판 사항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헌법재판관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한덕수 총리 탄핵 심판 7대 1 기각 결정을 대체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예언할 수 있었을까?
■ 사법의 정치화와 대통령 탄핵의 ‘중대성 기준’
헌재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국회가 제출한 탄핵 소추가 법에 정한 절차를 정확히 따랐는지 따진다. 재판관 6명 이상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면 ‘각하(却下)’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2.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그 여부를 판단한다.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즉시 탄핵 소추를 ‘기각(棄却)’한다. 그리고 여러 탄핵 소추 사유 중 단 하나라도 위반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3. 위반 사실이 파면(탄핵)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위법인지 아닌지를 따지고 최종 선고한다.
![]() |
[ 헌법소원 심판절차 흐름도.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 |
지난 3월 24일 한덕수 총리 탄핵 7대 1 기각 결정 판결문에는 다음과같이 한 총리가 헌법 위반행위를 했음을 명백히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피청구인은 당시 재판관 선출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국회로부터 헌법재판관 선출 통지를 받기도 전에 국무회의나 담화문 등을 통하여 여야의 합의를 전제로 재판관을 임명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등 국회가 선출한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미리 종국적으로 표시함으로써, 헌법상의 구체적 작위의무를 위반하였다.
따라서 피청구인은 헌법 제66조, 제111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등을 위반하였고, 이는 헌법상 탄핵 소추사유인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그 행위가 파면을 결정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헌재가 최종 결정을 내릴 때, 그 근거인 ‘중대성 기준’은 대체 어떤 것들일까?
이에 대해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선고하며, 판결문에 그 판단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대통령 경우에는 파면 결정 효과가 지대하기 때문에, 파면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압도할 수 있는 중대한 법 위반이 존재해야 한다는 이유와 함께였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중요성을 감안, 원문 표현 그대로를 옮긴다).
- ‘대통령의 파면을 요청할 정도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 위반’이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서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를 구성하는 기본 원칙에 대한 적극적인 위반행위를 뜻하는 것이고, (중략)
따라서 예컨대,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받은 권한과 지위를 남용하여 뇌물수수, 공금의 횡령 등 부정부패 행위를 하는 경우, 공익 실현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명백하게 국익을 해하는 활동을 하는 경우,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국민을 탄압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선거의 영역에서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부정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의 조작을 꾀하는 경우에는,
대통령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한다.’
![]() |
![]() |
[ 헌법재판소 상징문양과 설명문.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 |
이 기준으로 보면 내란수괴 피고인 윤석열과 한덕수 총리는 ‘권한을 남용하여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에 명백히 해당하는 반헌법 행위를 저질렀다.
따라서 헌재 재판관 개개인이 각자 자신 기준으로, 한덕수 총리 탄핵 심판 7대 1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필자는 그런 결정 배경에, ‘정치의 사법화’보다 훨씬 더 국가에 치명적인 ‘사법의 정치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헌재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이 재판관 집 주소까지 공개하고 찾아가는 극우세력의 난동과 집권 여당의 극심한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결과,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그전까지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석방 판결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역시 ‘사법의 정치화’ 현상 중 하나이다.
이로 인해 법치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발생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지금 헌법 가치 붕괴, 나아가 민주공화국 붕괴 일보 직전 위기에 놓여있다.
지금까지 헌재는 국민이 ‘내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나라 경제가 파탄 일보 직전에 내몰릴 때까지,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를 미루고 또 미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헌법 위반임을 인정하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한덕수 총리 역시 탄핵을 기각했다.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는 헌법 수호 책무가 있는 최고 기관인 헌법재판소 스스로, 자기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법관으로서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판단한다는 재판관들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국민 10명 중 절반이 헌재를 불신하는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헌재가 다시 신뢰를 회복할 길은 단 하나뿐이다.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관위에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했다. 이보다 더 명백한 근거는 있을 수 없다. 불법 계엄 내란수괴 윤석열을 8대 0으로 파면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을 살리고, 헌재가 다시 사는 유일한 길이다.
대한민국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4월 4일 심판, 헌법재판소의 옳은 결정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