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그리스 여행후기] ⑬그리스 초기 기독교 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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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튀르키예/그리스 여행후기] ⑬그리스 초기 기독교 성지 순례

- 바울의 마케도니아 첫 성도, 루디아를 위한 기념교회
- 외부 침입에 대비, 절벽 위에 세운 메테오라( Meteora ) 수도원

[ 그리스 메테오라( Meteora ) 수도원 ]

[한국시사경제저널]

■ 빌립보 – 루디아 기념교회

소아시아에서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마케도니아로 건너온 바울은 네압볼리에서 바로 빌립보로 왔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면 회당에 가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전도 여행 중이던 바울 일행도 안식일에 유대교회당에 가야 했는데, 빌립보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기에 강가에서 기도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울은 ‘루디아( Lydia )’를 만난다( 영어로는 Lydia이다. 지금 번역한다면 '리디아'로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루디아'로 나오니 여기서도 '루디아'로 쓴다 ).

바울의 말을 듣고 루디아와 가족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

아마도 ‘루디아’는 유대인은 아니지만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이 루디아의 마음을 열었을 때 바울의 말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사도행전 16장 13~15절)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자와 그 씨앗으로부터 열매의 결실을 맺게 하는 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말씀을 전하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람이 말씀을 전해서 결실을 맺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내가 말씀을 전했을 때 그가 바로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한다.

두려워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루디아는 바울로부터 세례를 받는 마케도니아 첫 번째 성도였다. 그래서 루디아를 기념하기 위한 루디아 기념교회가 빌립보 유적지 근처에 세워졌다.

루디아 기념교회는 그리스정교회 교회로 1974년에 건축됐다.

교회 내부에는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바울이 빌립보에 오게 된 것과 빌립보에서의 활동 내용이 장식되어 있다. ​




[ 교회 내부 바닥에 장식된 전도여행 경로 ]

바울과 루디아가 만난 강은 자각티스( Zygaktis ) 강이라고 하며, 루디아 기념교회로 부터 5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다.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서 '시냇가' 정도가 맞을 것 같다.

'강' 이야기를 하면 보통 한강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래서인지 이것이 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으로, 강에 발을 담갔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한 것이 여름이라면, 분명 이 근처 어디에선가 발을 담갔을 것이다. 아니면 여름이 아니었더라도 기도하기 전 정결 의식으로 손과 발은 씻었을 것이다.

​바울과 같은 길은 갈 수 없겠지만, 바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좋겠다.

[ 루디아 교회 밖 강가 ]

■ 메테오라 수도원

메테오라( Meteora )는 '공중에 떠 있는'이라는 의미이며, 그리스 중부 칼람바카 지역의 기암절벽 위에 건설된 공중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9세기경 기독교 수도자들이 이곳 절벽의 동굴이나 틈새에서 은둔 생활을 한 것이 수도원의 기원이라고 한다.

11세기경에 조직적인 수도자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절벽 위에 소규모 예배당을 건설하면서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14세기경에는 수도자들이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교회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험준한 절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5세기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메테오라 수도원은 은둔의 중심지이면서 필사본 성경과 성물들을 보존, 그리스 정교회와 헬레니즘 문화를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때 메테오라 지역에는 24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 메테오 수도원, 바를람 수도원, 트리니티 수도원, 성 스테파노 수도원, 성 루사누 수도원, 성 니콜라우스 아나파브사스 수도원 등 6개만 남아 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여 수도원들을 관광객에게 개방은 하고 있으나, 지금도 여전히 수도사들이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바를람 수도원( Varlaam Monastery )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요한계시록 15장 3절과 4절에 있는 말씀 중 일부이다.

- 주 하나님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 개역 개정판 )

수도원에 들어가면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수도원의 과거 역사, 사진, 성경과 성화 등 소장품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도원 외부와 박물관을 제외한 내부는 대부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나 외적이 침입했을 때는 누구로부터 자신과 신앙을 지켜야 하는지가 명확했을 것이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많은 나라에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별다른 제약이 없다.

그러면, 지금 기독교인들의 믿음이나 신앙생활이 그때보다 더 열정적이고 신실할까? 아쉽지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내 믿음 생활을 돌아본다.

온전히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풍족하고 자유로운 세상 생활이 주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세상을 등지고 은둔에 들어가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도자들이 사람들이 적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왜 은둔에 들어갔는지 이해가 간다. 세상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했던 것은 혹시 아닐까.

그런데 교통인프라가 발달하면서, ‘은둔의 수도원’이 이제는 관광지로 변해버린 역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To be continued...




[ 필자 소개 ]

김범모

국회 정책연구위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 박홍근 원내대표 정책특보, 문재인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서울외국환중개(주) 전무이사 역임.
현 광주 경제진흥상생 일자리재단 비상임이사.

( 본지 객원 필진으로 합류한 김범모 이사는 국회와 기업, 정당을 거친 실력있는 경제·재정 전문가입니다. 또한 최근에 텀블벅을 통해 ‘소시민이 사는 법 – 시장으로 간다’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합니다. )



김범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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