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그리스 여행후기] ⑫네압볼리( Neapolis )와 빌립보
검색 입력폼
사설·칼럼

[튀르키예/그리스 여행후기] ⑫네압볼리( Neapolis )와 빌립보

-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첫 관문, 네압볼리( Neapolis )
- 빌립보( Philippi ) 유적지
- 빌립보 감옥과 사도 바울

[ MS bing으로 만든, 빌립보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과 실라의 상상도 ]

[한국시사경제저널]

사도 바울은 두 번째 전도 여행을 할 때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금의 그리스에서 예수님을 전했다.

바울이 처음부터 마케도니아나 아가야를 선교 대상으로 고려했던 것은 아니다. 바울은 아시아 지역에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유럽에, 그리고 전 세계로 말씀이 전해지길 원하셨던 것이다.

바울이 마게도냐( 마케도니아 )에 말씀을 전했기에, 당시 로마 제국에 말씀이 전해질 수 있었고 유럽에서 미국 대륙으로, 그리고 우리나라에까지 예수님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사도행전 16장 7~9절 )

2017년 가족들과 함께 그리스를 포함하여 유럽을 여행했다.

우리 가족들만의 자유여행이어서 어디를 갈 것인지 스스로 정해서 움직였다.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에서만 머물렀는데, ‘고린도’와 ‘수니온곶’ 두 곳 중 어느 곳을 갈 것인지 고민하다가 교통편을 찾기가 비교적 쉬었던 ‘수니온곶’만 다녀왔었다.

그래서 고린도를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성경의 지리적 배경 대부분이 이스라엘, 튀르키예, 그리스 지역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에 현지에 가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많았다.

고린도 전후서를 볼 때는 고린도가,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볼 때면 데살로니가가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이번 성지순례 여행이다.

-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케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 사도행전 16장 11~12절 )



지금은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육로로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를 오고 갈 수도 있고, 배를 탄다고 하더라도 바울 시대처럼 이틀이나 걸리지 않는다. 물론 국경을 넘기 위한 세관 심사에 시간은 얼마간 걸리겠지만, 참으로 편리하고 편한 시절이다.


그리스 까발라( 성경속 네압볼리 )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사도 바울 도착 기념교회이다.

일정상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버스 안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를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 빌립보( Philippi ) 유적지

사도 바울이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처음으로 전도한 빌립보는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 빌립보( Philippi )는 지금은 그리스, 당시에는 마케도니아에 속했다.




원래부터 도시 이름이 ‘빌립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크레니데스( Crenides )라는 이름의 도시였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 왕 필립 2세가 이 근처에 금광이 있음을 알고서 금광개발을 위해 성을 건설하고 ‘빌립보( Philippi )’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도로인 에그나티아( Egnatia ) 가도‘를 만들면서 교통의 요지가 됐다.

이후 로마는 이곳에 퇴역한 로마 군인들을 정착시켰는데, 이곳 출신들은 대부분 로마 시민권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빌립보는 로마 총독 간섭 없이 자치적으로 행정을 꾸려갈 수 있는 혜택도 받았다고 전해진다.

도시가 폐허가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지진 때문이었고, 이후 슬라브족과 같은 외적의 침입으로 쇠퇴하다가 14세기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으로 완전히 황폐화 되었다고 한다.

지금 발굴되어 확인된 유적으로는 도시 성벽, 에그나티아 가도, 원형극장, 아고라, 교회 그리고 사도 바울이 갇혔었다고 전해지는 감옥 등이 있다.



사도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처음 도착한 곳은 네압볼리( 지금의 까발라 )인데, 왜 빌립보에서 말씀을 전했을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네압볼리가 독립적인 도시가 아니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빌립보의 항구도시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빌립보는 당시 로마 식민도시였지만 마케도니아 지역에서는 로마 퇴역군인들이 정착할 정도로 중요했고, 경제적으로 번영한 교통의 요지였기에 네압볼리가 아니라 바로 빌립보로 갔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사도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오게 된 환상에서 보았던 마케도니아 사람의 복장이 빌립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복장과 같았다.

하지만, 성경에는 왜 빌립보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네압볼리를 거쳐서 빌립보에 갔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은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로 개명하기 전 사울의 눈을 멀게 하고, 아나니아를 통해 다시 눈을 열어 주시면서 복음의 전도자로 삼으셨다.

이때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사울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택하였음을 말씀하셨다.

그렇게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말씀을 전했기에, 복음이 유럽과 미주 대륙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빌립보는 의미가 있는 도시다.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사도행전 9장 15절 )

■ 빌립보 감옥과 사도 바울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국가에서는 어떤 종교를 전하든, 불법행위만 없다면 감옥에 갇히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지금도 이슬람 국가 등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에서는 종교를 함부로 전할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되는데, 이 귀신이 바울을 괴롭게 하므로 여종으로부터 귀신이 떠나가게 해준다.

그러나, 여종을 통해 돈을 벌던 주인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이 여종을 통해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관리들에게 붙잡아 가서 예수님 전하는 것을 가지고 처벌을 받게 한다.

빌립보 관리들은 바울에게는 묻지도 않고, 고발자들의 말만 듣고 바울 일행을 때리고 감옥에 가둔다.

-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사도행전 16장 22~24절 )

이때 바울이 갇혔었다고 전해지는 감옥이 빌립보 유적지에 있다.




그런데 에게. 이게 뭐야? 감옥이 상상하고는 너무 달랐다.

물론 파괴된 폐허 유적지에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고, 빌립보에 교회도 건립되었기에 감옥이었던 근거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상하고 너무 달라서 실망 아닌 실망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감옥의 모습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견딜 수 있는가?

감옥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가?

기회가 주어질 때,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전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이다.

​나는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To be continued ...




[ 필자 소개 ]

김범모

국회 정책연구위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 박홍근 원내대표 정책특보, 문재인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서울외국환중개(주) 전무이사 역임.
현 광주 경제진흥상생 일자리재단 비상임이사.

( 본지 객원 필진으로 합류한 김범모 이사는 국회와 기업, 정당을 거친 실력있는 경제·재정 전문가입니다. 또한 최근에 텀블벅을 통해 ‘소시민이 사는 법 – 시장으로 간다’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합니다. )

김범모 기자
키워드 : 네압볼리 | 빌립보 | 사도 바울
사설·칼럼 주요뉴스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