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앙 칼럼/계엄 특집] ②계엄령과 군 정보기관(보안사,기무사)의 권력 찬탈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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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앙 칼럼/계엄 특집] ②계엄령과 군 정보기관(보안사,기무사)의 권력 찬탈 DNA

- 계엄령 속 장면 2. 중앙정보부마저 짓밟았던 전두환의 보안사
- 5.18 직전 계엄 때의 보안사, 이를 모방한 박근혜 탄핵 시기 기무사령부
- ‘하나회’ 뒤를 이은 군 내부 사조직 ‘알자회’의 화려한 부활
- 최순실 비선 세력과 ‘알자회’
-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진정한 목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1991년부터 2018년까지 존재했던 국군 기무사령부 마크 ]
[한국시사경제저널]

1979년 12월 6일, 박정희 유신헌법 가운데 악명높던 ‘긴급조치’ 9호가 마침내 해제됐다.

그러자 226일 만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과 최규하 대통령을 향해 다음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다.

- 오늘로써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상당수의 민주 인사들이 석방된 것을 만시지탄은 있지만 환영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의 복권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기타 죄명으로 옥중에 있는 인사들의 석방 조치가 병행되지 않는 데 대해서 유감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경제를 신봉하며, 복지 사회 건설을 열망한다. 나는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이라는 신념과 목표에는 확고부동하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하며 대화와 인내와 질서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전례없이 위험하고 중대한 시점에 처해 있다. 과오를 범한 사람은 반성하고 고통 받는 사람은 관용하는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는 민족의 슬기와 역량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나도 박 정권 아래서 약간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지만, 나는 내가 겪은 쓰라림이 앞으로는 이 나라에서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나의 신앙과 양심에 비추어 바라는 바이다.

이와 동시에 김 전 대통령은 성명에서 시급히 조치해야 할 다섯 가지 사항을 최규하 대통령에게 제시했다.

첫째 긴급조치 이외의 이름으로 묶여 있는 모든 정치범의 석방과 복권, 둘째 연내 개헌과 선거 실시 등 민주 정부 수립 절차를 국민 앞에 명확히 밝힐 것, 셋째 거국 중립내각 구성, 넷째 계엄령 조속 해제, 다섯째 과도정부 내 민의 수렴 합의체 구성. ( 김대중 자서전 1. 389페이지 )

그런데 불과 6일 뒤인 79년 12월 12일, 충격적인 군사쿠데타가 벌어지고 정승화가 체포됐다. 계엄령하에서 계엄사령관이 체포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두환 신군부의 군권 장악이라는 중대한 사태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권뿐인 상황.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권이 단결, 국회에서 계엄령을 해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민주공화당과 김영삼 총재가 이끌던 신민당에 연락을 했다. 아직 복권이 되지 않아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정치활동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가 위태롭습니다. 전두환 사령관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저들 무기가 계엄령입니다. 계엄령만 해제하면 호랑이의 어금니를 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공화, 신민 양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투였다. 심지어 김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하려는 술수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전두환 신군부는 치밀한 계획하에 계엄령 해제와 민주 정부 수립을 외치던 국민과 정치권의 열망을 철저히 짓밟았다.

필자는 이제부터 당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학생들과 정치권의 움직임, 그리고 이에 대해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 찬탈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고 계엄 해제 요구를 무력화시켰는지, 그 자세한 내막을 살필 예정이다.

그 이전에 2017년 기무사 계엄문건이 5.18 전후 계엄 상황과 어떤 연관성이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 계엄령 속 장면 2. 중앙정보부마저 짓밟았던 전두환의 보안사

[ 2020년 개봉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

원래 군단장급 직위인 보안사령관은 중장 계급 이상 장성이 맡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그런데 10.26 사건 7개월 전인 1979년 3월 5일, 박정희는 당시 49세의 소장 계급 전두환에게 파격적으로 보안사령관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그런데 보안사령관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자리였지만, 당시 실질적인 권력 서열은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밑이었다. 그래서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을 맡았던 초기에는 전혀 권력의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차지철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던 관행을 무시하고 전두환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먼저 보고하게 했다. 심지어 김재규는 보안사령부 일반 정보 업무를 중앙정보부 통제하에 묶어뒀다.

그러자 전두환은 군과 하나회 후배이자 최측근인 허삼수, 허화평, 이학봉 등을 보안사령부에 배치,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라는 절대권력이 사라지면서 합동수사 본부장에 취임, 권력을 향한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필자가 본지( 한국시사경제저널 ) 2024년 7월 13일자, ‘[ 5.18 특집 ] ④ 5.18 직전 시대 상황 3 – 만약 전두환이 10.26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이 아니었다면’ 기사에서 자세히 분석한 것처럼, 원래는 계엄 시기 합동수사본부장 자리가 전두환에게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권력 공백의 혼란기, 계엄사령관 정승화가 안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판단 착오로 합동수사본부장이라는 ‘절대 반지’를 전두환에게 안겨 줬던 것.

이후, 절대 반지를 손에 쥔 전두환은 거칠 것이 없었다. 곧바로 보안사 처장들을 합수부 각 국장에 임명, 신속하게 핵심 정보 권력 기관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시해 사건 주범이었기 때문에, 수사 핑계로 중앙정보부와 경찰을 비롯한 모든 수사·정보기관의 권한을 보안사령부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동안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중앙정보부를 하루아침에 국가원수를 시해한 ‘역적 소굴’로 낙인찍었다.

때문에 중앙정보부 국장급 이상 간부 전원이, 국가원수 시해 반역에 협조한 혐의로 악명 높은 ‘빙고호텔’( 보안사 서빙고 분실 )에 줄줄이 끌려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 내내 기세등등했던 중앙정보부 간부들은 빙고 호텔 관례대로, 허리띠 없는 군복으로 갈아입은 뒤 무자비한 ‘매타작’을 당해야 했다.

다행히 초동수사에서 김재규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나면서 중정 간부들 전원이 사표 쓰고 풀려나던 날. 곧바로 남산 중앙정보부 청사로 복귀했을 때, 현관에 도열했던 중정 부국장, 과장들을 껴안고 그들은 한참 동안 통곡을 하고 말았다.

군이 정권을 장악했던 기막힌 시절이 남긴, 웃지 못할 일화였다.

중앙정보부마저 철저히 짓밟을 만큼, 계엄령하에서는 군 정보기관에 무소불위의 힘이 집중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이다. (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폴리티쿠스, 2012년. 755~756 페이지 )

이후 전두환은 겸직이 금지됐던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 정권 찬탈을 위해 중정을 자신에게 충성하는 조직으로 탈바꿈 시킨다.


■ 5.18 직전 계엄 때의 보안사, 이를 모방한 박근혜 탄핵 시기 기무사령부

[ 2017년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계엄문건 중 ‘계엄사령부 합동수사기구 설치’ 부분 ]

그런데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근혜 탄핵 시기 기무사령부 계엄문건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계엄령하 합동수사본부장 추천 및 국정원 장악과 관련된 부분이다.

우선 기무사 계엄문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기구 설치’ 항목을 살펴보자.

1. 계엄사령부에 합동수사본부를 두며, 합동수사본부장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 업무를 관장한다.

2. 지구계엄사령부에는 지구 합동수사단을, 지역계엄사령부에는 지역 합동수사단을 두며…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 업무를 관장한다.

3. 합동수사본부 및 합동수사단의 구성과 합동수사기구의 업무분장은 대통령령 제16211호( 계엄사령부 직제 ) 제7조 및 8조를 준용한다.

2017. ○○. ○○.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 ○ ○

한마디로 계엄령이 발동되면 5.18 전후 계엄 시기 보안사령부가 그랬듯이, 박근혜 정권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이 대한민국 전체( 서울뿐만 아니라 각 지구, 지역까지 )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을 조정·통제 한다는 내용이다.

헌법과 계엄법에 명시된 계엄은 경비계엄과 비상계엄 두 가지다. 경비계엄은 계엄군이 ‘해당 지역 군대의’ 사법권과 행정권을 행사한다. 반면 비상계엄은 계엄사령관이 ‘해당 지역의 모든 사법권과 행정권’을 갖는다.

그런데 특이한 부분은 계엄사령관을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육군대장’으로 설정하고 있는 점이다.

과거에는 전국 비상계엄 시기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이 주로 맡았다. 군의 군정권과 군령권을 육군참모총장이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합동참모의장이 군령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계엄이 선포되면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되는 것이 순리다.

실제 법령상으로도 합동참모본부 직제 제2조에는 계엄업무 관장 부서인 ‘합참 민군작전부 계엄과’가 있다. 반면 육군본부 직제에는 그런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 시기 기무사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때문에 굳이 합참의장 대신 ‘육군대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설정한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의혹을 풀기 위해 당시 계엄문건의 또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합동수사본부를 이끌고 지휘할, 합동수사본부장에 대한 내용이다.

[ 2017년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계엄문건 중 ‘합동수사본부장 추천 건의’ 부분 ]

계엄문건 ‘합동수사본부장 추천 건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판단 요소

○ 계엄사령부의 합동수사본부장은 정보수사기관에 소속한 현역 장관급 장교이어야 함( 계엄사령부 직제 )

○ 합동수사본부장은 계엄사령관의 명을 받아 국정원, 경찰, 헌병 등 수사기관을 조정·통제해야 하므로 군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적절함.

○ 또한, 기무사령관은 군내 정보수사기간의 장으로 평소에도 정보 및 수사업무를 지휘하고 있어, 계엄상황에서도 중단없이 합동수사업무 수행이 가능함.

그리고 검토 결과 합동수사본부장에는 국군기무사령관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던 조현천이 계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야 된다는 얘기다.

또 관심을 두고 살펴봐야 할 다른 내용은 합동수사본부의 국정원 장악과 관련된 부분이다. 문건에서 ‘유관기관 통제 방안’에 담긴 부분을 살펴본다.

[ 2017년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계엄문건 중 ‘유관기관 통제 방안’ 국정원 장악계획 ]

○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 국정원법(제2조)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음.

○ 이럴 경우, 비상계엄은 헌법에 근거하여 국정원법보다 우선 적용되며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 내 행정·사법 업무를 관장함을 통보하고
* 계엄법(제7조) : 계엄선포시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

○ 또한,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국정원 2차장을 계엄사로 파견시켜 계엄사령관을 보좌토록 조치.

이상 내용을 종합하면 박근혜 탄핵 시기 기무사는 과거 전두환이 5.18 전후 합동수사본부장 직함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것처럼,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에 추천하고 반발이 예상되는 국정원까지 장악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합참의장 대신 굳이 ‘육군 대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조현천 기무사령관 임명 배경과 군 내부에 존재했던 사조직 ‘알자회’에 대한 접근을 통해 실마리를 찾기로 한다.


■ ‘하나회’ 뒤를 이은 군 내부 사조직 ‘알자회’의 화려한 부활

2016년 12월 22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청문회에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1992년에 해체된 육사 출신 사조직 '알자회'가 박근혜 정권에 의해 다시 부활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육사 34~43기 출신들이 만든 '알자회'를 알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 우병수 전 수석이 “들어봤다”고 답변하자 박범계 의원은 익명 제보자의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알자회가 하나회처럼 살아났다. 우병우와 안봉근이 뒤를 다 봐주고 있다”는 주장이 주요 내용.

이어서 박 의원은 “임호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조현천 기무사령관 등 알자회가 작년까지 매해 강원도 속초 콘도에서 회의를 해왔다. 내년 인사에 누가 총장으로 가고, 누가 수방사에 가고 특전사, 기무사에 간다고 작당 모의를 했다”는 주장을 했다.

[ 박범계 민주당 의원, 2016년 국회 청문회에서 우병우 전 청와대 수석을 '알자회' 배후로 지적하는 장면. 출처 : YTN 동영상 캡처 ]

당시 박 의원이 우 전 수석과 기무사령관의 군 인사 개입 정황에 대해 폭로한 내용은 이렇다.

“우 전 수석이 지난 7월 군 인사에서 알자회 회원인 권 모, 신 모 대령의 장성 진급 '오더'를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통해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에게 내렸다. 권 대령의 경우 뇌종양으로 전역 사유에 해당됐지만, 인사 2주 전 신체검사를 통해 합격 통보를 받고 장성으로 진급했다.”

“신 대령 역시 장성 진급 오더가 내려갔지만 진급이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에게 항의했고, 장 총장이 조 사령관에게 사과 전화까지 했다.”

“우 전 수석이 본인의 인사 검증과 국정원 추명호 전 국장, 조현천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군내 인사 정보를 받으며 군 인사에 개입하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알자회를 살아나게 했다.”

이후 2016년 12월 28일, 세계일보가 ‘군대 사조직 '알자회' 조현천 기무사령관 발탁 후 세력화’라는 제목의 단독기사를 내면서 알자회 부활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막이 알려졌다.

당시 세계일보가 입수해서 발표한 ‘최순실 비선을 활용한 군 인사 개입 관련 보고’라는 문건은 육사 38기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임호영 대장, 39기 항작사령관 장경석 중장, 41기 특전사령관 조종설 중장,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장경수 소장, 43기 12사단장 성일 소장, 전투지휘훈련( BCTP ) 단장 송지호 준장, 논산훈련소 참모장 김덕영 준장 등을 군 요직에 포진한 알자회 출신이라고 실명 거론했다.

이와 함께 누군가의 힘이 작용하지 않고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알자회 선배인 장경석 중장이 장경수 소장에게 국방부 정책기획관 자리를 물려주고, 특전사령관에 장경석·조종설 중장이, 12사단장에 장경석·조종설 중장과 성일 소장이 대물림한 정황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군 정기인사에서 김현집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만에 교체되고, 그 자리에 임호영 중장이 대장으로 진급한 것에도 조현천 기무사령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겨있었다.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2015년 추석 사흘 전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고 격려금까지 받았고, 2014년 10월 조 기무사령관 발탁 이후 알자회 출신이 다수 군내 요직에 보임됐다는 내용이 문건의 핵심 요지였다.


■ 최순실 비선 세력과 ‘알자회’

육사 34기부터 43기까지 기수별 10여 명씩 총 120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알자회’. 원래 모임 명칭은 “알고 지내자”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때 육군 내에서 알짜 보직을 주고받아서 ‘알짜회’라는 별명도 있었다.

‘하나회’의 뒤를 이어 군내에 존재하던 사조직 ‘알자회’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내막은 다음과 같다.

1992년, 암암리에 알자회 출신이 군내 요직을 차지했던 사실이 크게 문제가 됐다.

그러자 당시 육군지휘부가 알자회 가입 장교 1백20명 중 육본 인사운영감실, 청와대 경호실, 수방사 등 노른자 보직에 근무하고 있는 20명의 보직을 변경키로 결정, 우선 보직 기간이 1년 넘은 8명을 전방부대로 전출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92년 11월 15일 육사 37기( 77년 입교, 81년 임관 )와 40기( 80년 입교, 84년 임관 ) 상당수가 야전복 차림으로 전방부대 등에서 지역별로 버스를 대절, 육사로 대거 집결했다. 그러자 일파만파 확산한 그 사태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육사 37기 출신 소령 1백60명과 40기 대위 1백80여 명은 육사에서 각각 동기회 긴급총회를 열고 알자회 가입 동기생들에 대한 동기회 제명 여부 등을 논의했다.

오전 10시부터 총회를 가진 40기는 알자회 회원 120명 명단을 칠판에 적어놓고 회의를 진행, 표결에 부친 끝에 알자회 가입 동기생들에 대한 제명을 결의했다.

이 사건의 여파는 다음 해인 1993년 8월, 소령 진급 심사 대상이었던 육사 41기 중 알자회 회원 11명을 아예 진급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채, 육군 사상 최초로 심사 과정을 전면 공개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후 숙청으로 인해 제거된 것으로 알려졌던 알자회가, 23년 만에 박근혜 정권에서 조현천 기무사령관 임명을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것이 2016년 박근혜 탄핵 시기 국회와 언론을 통해 부각됐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 육사 36기였던 장경욱 소장을 기무사령관에 임명했으나 불과 6개월 만에 경질했다.

이후 2013년 10월, 박근혜의 남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고교 및 육사 동기인 이재수( 육사 37기 ) 기무사령관이 취임했다. ‘육사 37기 전성시대’라는 말이 떠돌던 시점이다.

그런데 통상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이재수 기무사령관 역시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과 함께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정윤회 문건’ 등 최순실·정윤회 비선 실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것이 결정적인 경질 사유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리고 이재수 사령관 뒤를 이어 취임한 인물이 바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었다. 이후 한겨레 신문은 2016년 12월 28일 자 “최순실 비선이 군내 ‘알자회’의 배후”라는 제목 기사를 통해 조현천 기무사령관 임명 배경을 알렸다.

같은 날 세계일보가 단독 입수 보도했던 ‘최순실 비선을 활용한 군 인사 개입 관련 보고’ 문건에, 국내 정보수집을 총괄하는 알자회 출신 추 아무개( 육사 41기 ) 국정원 국장이 자신의 누나와 최순실 씨의 친분을 계기로 최씨 비선라인에 접근, 알자회 선배인 조현천( 육사 38기 ) 기무사령관을 추천했다는 내막이 담겨있다는 것.

이후 조 사령관은 군내 인사 정보를 국정원 추 국장에 전달했고, 추 국장은 이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봉근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제공해서 군 인사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진정한 목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두환은 계엄령하에서 합동수사본부장에 취임, 계엄사령관과 중앙정보부를 무력화시킨 뒤 정권을 찬탈했다.

박근혜 탄핵 시기 보안사에서 명칭만 바뀐 기무사는 계엄을 기획하면서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에 천거하고 국정원을 장악하려 했다.

5.18 전후 계엄 상황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 대장으로 내세우려 한 것도, 알자회 출신 장성을 계엄사령관으로 앉히고 실질적인 권력은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틀어쥐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래서 기무사 계엄문건을 폭로했던 군인권센터는 당시 기무사 참모장( 육군 소장 )과 함께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내란예비음모 및 군사반란 예비음모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계엄문건의 실제 실행 여부 관련, 기무사 계엄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기우진 당시 기무사 준장은 “장관님이 추가로 명령하면 실제로 계획이 실행됐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 계엄문건 검찰수사 과정, 당시 기우진 기무사 준장 답변 내용. 출처 : MBC 뉴스 캡처 ]

또 문건에 등장하는 ‘의명’(依命)이란 표현에 대해 실무자 중령에게 뜻을 묻자, “지시만 있으면 바로 시행한다는 뜻으로, 장관 지시가 있으면 실시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 기무사 계엄문건 관련, 이석구 기무사령관 발언 내용. 출처 : MBC 뉴스 캡처 ]

그리고 조현천의 후임자였던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세부 자료를 보고 너무 놀랐다. 1주일간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 2019년 11월 JTBC 방송 기무사 계엄문건 실무진 검찰 자필 진술 내용. 출처 : JTBC 뉴스 캡처 ]

JTBC가 계엄문건 실무진 검찰 진술조서를 입수해서 2019년 11월에 보도한 뉴스에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직접 지시, 계엄사령관과 실무진을 모두 육군으로 변경하고 “실제 5.18처럼 특전사 투입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혹자는 ‘21세기에 무슨 계엄 타령이냐?’며 계엄설을 ‘망상’이라고 비난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기무사의 계엄 계획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계엄설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할 대한민국 군의 수준을 무시하는 일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계엄문건 작성에 직접 참여했던 기무사 실무진은 검찰 조서에 자필로 다음과 같은 진술을 남겼다.

“조사를 받다 보니 조현천 사령관님과 소강원 처장님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로지 지시한 임무만 수행한 것 같습니다. 군인 신분인지라 처음 임무를 부여받았을 시 거부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5.18을 모방해서 특전사와 탱크 투입계획을 직접 지시하고,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를 통해 실권 장악을 계획했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그의 진정한 목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소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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