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 5월 광주 도청앞, 약 2만여 명이 모인 '민주화운동 대성회' 장면 ] |
■ 지금 시점, 5.18 특집기사를 내는 이유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원 구성 협상은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채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등으로 여야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여기에 각각 차기 당대표 선출 문제에 대해 정치권은 연일 당헌 개정 문제로 논란을 벌이고 있는 상황.
게다가 이미 5월 지나 6월로 접어들었는데 새삼스럽게 5.18 특집? 아마도 생뚱맞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5.18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작년 12월로 조사 활동 시한이 만료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이하 5.18 진상조사위 )’가 발간하고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해야 할, 44년 만의 ‘최초 국가 차원 5.18 종합보고서’ 시한이 오는 6월 26일로 곧 다가오기 때문이다.
과거 88년 국회 청문회, 95년 검찰수사, 2017년 국방부 조사 등에서 나온 보고서들은 각각 국회와 검찰의 범죄 수사 차원에서 진행된 조사였다는 점에서, 이번 보고서는 격이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미 종합보고서 이전 단계로 올해 2월에 공개된 5.18 진상조사위 ‘개별보고서’가, 진상규명은커녕 부실·왜곡으로 가득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래서 5.18 관련 단체들과 광주 시민사회로부터 비난과 항의의 태풍이 한바탕 휘몰아친 바 있다.
문제는 광주 시민사회나 5.18 단체를 벗어나면, 대다수 국민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중앙 정치권에서도 44년 만의 최초 국가 차원 보고서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본지( 한국시사경제저널 )는 ‘5.18의 진상에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가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과 함께, 몇 차례 5.18 특집기사를 싣기로 함을 독자들께 말씀드린다.
부디 많은 분들이, 지금 마무리 단계에 있는 ‘5.18 진상조사위원회’ 활동과 진상규명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 보수우파에게 5.18 왜곡, 헌법전문 수록 반대 논리 제공한 5.18 조사위 개별보고서
고 노무현 대통령 일대기를 모티브로 2013년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변호인’. 그 배경이자, 5공 시절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례인 ‘부림사건’의 담당 공안검사.
2015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노무현은 변질된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으로 크게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
박근혜 정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맡고 있던 시절, 촛불집회에 대해 “시민의 참여는 몇 명 없었고, 모두 민주노총이나 전교조에서 동원된 사람들”이라는 발언을 했던 사람.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정계 입문, 미래통합당과 무소속을 거쳐 2021년 ‘자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대표를 맡고 있는 변호사.
이상은 모두 같은 한 사람, 대표적인 보수우익 인사인 고영주 현 자유민주당 대표를 세간에 널리 알린 사건들이다.
그런데 그 고영주 대표가, 갑자기 지난 2024년 2월 19일 자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스카이데일리에 일제히 아래 광고를 실었다.
[ 자유민주당 대표 고영주 변호사가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반대주장 게재한 광고 ] |
주로 5.18 진상조사위 활동을 비판하고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5·18 민주화운동은 특정 정치세력과 북한의 개입 여부도 가려져야 국민화합적 결론이 가능하다.
‘국회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작년 12월 27일 군(전두환)의 발포 책임 소재, 무기고 피습 사건, 북한 공작조의 침투 여부 등에 대해선 진상규명을 하지 못한 채 4년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올해 6월 26일까지 최종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2. 5·18 발포명령자 존재 여부를 국회 조사위는 전방위 조사에도 밝히지 못했다. 명령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조사위원들 3분의 2가 문재인 정권이 지명한 5·18 직간접 참여자이고 4년간 조사에도 발포명령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상 발포 명령이 없었음을 말한다.
국회 조사위원장인 송선태가 5·18 직전 무장봉기 계획의 ‘자유노트’ 기록자이고, 무기고 습격·탈취일도 21일이 아닌 19일이라는 증언들을 볼 때 유혈 교전사태 책임은 군이 아닌 세력 쪽을 재조사해야 한다.
3. 북한 특수공작조의 5·18 광주전남 현장 개입 여부도 국회 조사위는 밝히지 못했다.
1980년 당시 미국 CIA 요원 마이클 이씨(조지 워싱턴대 정치학 박사)는 ‘5·18은 북한 개입 변란’이라는 CIA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고, 해제된 CIA 기밀문서에 의하면 ‘5·18은 특정 정치세력 추종자들과 공산당 요원의 공작과 조작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신숙희 국제자유주권총연대 2023.1.18.성명)
5·18 발생 3일전 전남 앞바다로 북한 공작조가 들어 왔다는 육군본부와 안기부의 첩보(스카이데일리 2023.08.30.), 북한의 ‘광주5‧18’ 참가 특수공작원 묘역(김대중 전 대통령 밀사 방북 김경재 증언) 등도 확인돼야 한다.
[ 4번 항목 생략 ]
5. ‘5·18 계엄군’의 명예도 사실에 입각해 회복돼야 한다. 국회 조사위가 4년 동안이나 조사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는 사실상 없었다.
6.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여부는 이 모든 사실이 규명된 뒤여야 하고 그래도 논란이 있으면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한 달 뒤인 3월 20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가짜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왜 안 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스카이데일리 제2회 열린포럼’이라는 행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고영주 변호사는 5.18 정신이 헌법전문에 수록돼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곧바로 그 뒤를 이어 행사를 주최한 스카이 데일리 신문사 조정진 대표는 긴말 안 하겠다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다.
“작년 6개월 동안 연재한 5.18 기사들을 모아 특별판을 발행했습니다. 강남에 한 2만 5천 부가 가고 있고, 전국적으로 한 3만 부가 가고 있습니다. 목포까지 가고 있고 한동훈이가 살고 있는 타워팰리스까지 배달이 되고 있습니다.
검증에 검증을 거쳐서 사실로 확인된 것만 썼습니다. 저희가 내린 결론은 5.18은 김대중 세력과 북한이 주도한 내란 맞습니다. 이것을 헌법전문에 넣는 것은 북한의 재남침 초대장입니다”
이날 주최 측은 KBS 아나운서 출신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의 축사 이후, ‘민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민진사)’라는 단체 출범을 알림과 동시에 여러 보수우익 인사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국정원 출신 정성홍 전 국가원로회 사무총장을 위원장, 전 미국 CIA요원 마이클 리를 명예 위원장, 고영주 자유민주당 대표와 김경재 전 자유총연맹 총재를 고문, 김태산 원로 탈북인과 조정진 스카이데일리 대표를 자문위원, 그리고 정호영 5.18 당시 특전사령관 수석부관과 계엄군 출신, 국정원 출신 인사 등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리고 위원들 간에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5.18 북한 연루설을 비롯하여 5.18 비하, 왜곡 발언들이 행사 끝날 때까지 거침없이 쏟아졌다. ( 해당 행사 영상은 현재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지금 고영주 자유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보수우익 진영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마저 동의한 바 있는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대한 반대를 넘어, 공공연하게 ‘역사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5.18 진상조사위의 부실·왜곡 개별보고서 문제가, 이제는 진상조사위 차원이 아니라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반대와 역사 전쟁으로까지 그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5.18 진상조사위의 부실 늑장조사
2023년 10월 13일,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장.
여러 국회의원들에 의해 진상 조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진상조사위가 출범한 지도 벌써 4년째. 그러나 직권조사 과제 21개 가운데 진상규명 결정이 난 것은 단 한 건밖에 없던 상황.
다음은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있었던 민주당 소속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과 송선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장관급 ) 사이의 문답 내용이다.
[ 안규백 : “‘계속 조사를 하고 있다, 하나하나 규명해 나가고 있다’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지금 계속 말씀하시는데, 이게 굉장히 업무를 방기한 것 아닙니까?” ]
[ 송선태 : “12월 20일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의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가 사장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겠습니다. 오는 10월 16일 전원위원회에서 ( 그동안 개최하지 못했던 )청문회의 주제 및 개최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것도 말씀을 드립니다” ]
그러나 5.18 진상조사위에 법적으로 보장된, 가장 중요한 권한 중 하나인 청문회는 진상조사위 내부 이견으로 끝내 개최되지 못했다.
5.18 진상조사위 산하 청문회 준비 소위원회가 4개 청문회 주제를 선정하고 준비에 나섰지만, 사무처가 이에 불복하여 자료 제출과 논의를 거부했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 최고 의결 기구인 9인 전원회의 구성원 중 일인인 김희송 위원 증언 )
이로 인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중요한 계기를 5.18 진상조사위 스스로 외면하고 만 것이다.
또한 활동 시한 만료 직전인 2023년 12월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최종결정을 내렸다는 점 역시 문제였다.
직권조사 대상 사건 총 21건 중 4개 사건을 병합, 제출된 17개 직권조사 보고서 중 11건은 ‘진상규명’ 그리고 나머지 6건은 ‘진상규명 불능’으로 작년 12월 한 달 동안 한꺼번에 의결한 것.
결국 2023년 12월 26일까지라는 조사위의 법적 활동 시한 때문에, 개별보고서에 담긴 오류나 왜곡을 시정할 기회 자체가 상실된 상황이다.
문제는 군 발포 경위 및 책임소재, 암매장 관련 조사, 5.18 당시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사건 등 6건의 그야말로 핵심이 되는 과제에 대해서 ‘진상규명 불능’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이다.( 이 중 무기고 ‘피습’이라는 표현은 또 다른 논란을 빚고 있다 )
바로 이 부분을 문제 삼아서 고영주 자유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보수우익 인사들은, ‘5·18 발포명령자 존재 여부를 국회 조사위는 전방위 조사에도 밝히지 못했다. 그러니 명령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 발 더 나가서, ‘5·18 계엄군의 명예도 사실에 입각해 회복돼야 한다. 국회 조사위가 4년 동안이나 조사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는 사실상 없었다‘라는 어마어마한 주장과 함께.
■ 광주시민이 무장한 이유와 시점, 계엄군 권용운 일병의 사망원인
5·18 조사위는 2023년 12월 26일 공식 조사 활동을 마친 후, 개별보고서( 직권사건 조사결과보고서 )에 불능 사유, 소수의견, 보충의견 등을 첨부하여 2024년 2월 29일 총 15건의 보고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그런데 개별보고서를 5.18 조사위가 공개하기도 전인 2월 19일에, 고영주 변호사는 보고서의 내용을 미리 정확히 알고 이를 비판하는 광고를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스카이데일리에 대대적으로 실었다.
5.18 조사위에서 보고서 내용과 결과를 사전에 유출했거나, 아니면 고영주 변호사와 소통하고 있는 내부자가 있지는 않은지 의혹이 제기될 상황이다.
어쨌거나 개별보고서 내용을 뒤늦게 접한 5.18 단체들과 광주 시민사회가 발칵 뒤집히면서 분노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3월 25일, ‘5.18 조사위 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라는 행사가 개최됐다.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 5.18기념재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 지부, 5.18민주유공자회,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의회가 공동 주관한 행사였다.
필자는 이 행사에 직접 참여하면서 5.18 진상조사위 개별보고서의 문제점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그날 가장 크게 문제가 됐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 광주시민들의 무장 이유와 전남 일원 무기고 공격 시점
5.18 당시부터 전두환 신군부는 ‘폭도’들이 먼저 무장하고 계엄군을 공격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자위권’ 차원에서 실탄을 지급하고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주장은 보수우파들이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 ‘북한군 침투설’을 내세우는 주요 근거가 됐다.
따라서 당시 광주시민들이 왜 무장을 하기 시작했고, ‘시민군’이 무기고를 공격해서 무기를 확보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가는 5.18 민주항쟁의 전체적인 성격과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5.18진상조사위는 ‘(직나–1)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발포경위 및 책임소재’와 ‘(직바-7)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일원 무기고 피습사건’ 보고서에 대해, 위원회 차원에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
때문에 5.18민주항쟁의 정당성을 부정해 온 전두환 신군부와 보수우익 논리에, 또 다른 왜곡의 근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사위 개별보고서가 과거 대법원과 광주고등법원 판결에 의해 5.18의 정당성에 대한 법적, 규범적 판단이 이미 내려졌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민변 광주전남 지부, 광주광역시의회 5.18 특위,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 등이 강한 비판에 나섰다.
과거 대법원은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에 대한 12·12 반란과 5·18 내란 사건의 전원합의체 확정판결’(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호 판결 )에서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전두환 등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시국 수습 방안의 실행을 모의할 당시 그 실행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과 저항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여 강력한 타격의 방법으로 시위를 진압하도록 평소에 훈련된 공수부대의 투입을 계획한 후 이에 따라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강경한 진압 작전을 감행하였으며,
이와 같은 난폭한 계엄군의 과잉 진압에 분노한 시민들과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함으로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그 후 일부 시민의 무장 저항이 일어났다.’
또 ‘전두환 회고록 관련 출판 금지 청구 등 사건’의 항소심인 광주고등법원 판결에서도, 전두환이 전두환 회고록을 통해서 시위대가 먼저 무장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확정판결에서 계엄군이 난폭하게 광주시민의 시위행위를 진압한 행위 자체를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 폭행 협박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고 있으므로, 계엄군의 잔혹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저항행위는 그 과정에서 설령 총기로 무장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 광주고등법원 2022. 9. 14. 선고, 2018나24881호 2018나 24898호 병합 판결 )
● 당시 계엄군이었던 권용운 일병 사망원인
1980년 5월 21일 13시경 광주 도청 앞, 당시 계엄군이었던 권용운 일병이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5월 21일 도청 앞 계엄군 집단 발포에 의해 수많은 광주시민이 희생된( 37명 사망, 175명 부상 ) 시점이다.
따라서 시위대에 의해 권용운 일병이 사망한 것을 보고 공수부대원들이 흥분해서 실탄사격을 하기 시작했다는, ‘자위권’ 주장에 대한 중요 판단 근거가 권 일병의 정확한 사망원인에 달려있다.
그런데 5.18 조사위는 ‘(직사-13)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작전에 참여한 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사망·상해 등에 관한 피해’ 보고서에서, 이 사안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
시위대 장갑차에 치어 사망했다는 진술과, 후진하던 계엄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했다는 진술이 함께 상존한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광주고등법원은 권용운 일병의 사망원인과 관련, 시민들이 운전한 장갑차( 도시형, 차륜형, 고무 타이어 바퀴형 )에 들이받혀 사망( 충격, 충돌로 인한 사망 )한 것이 아니라고 이미 판결한 바 있다.
계엄군 장갑차( 무한궤도형 )의 후진으로 인해 무한궤도에 깔려 사망( 역과형 사망 )한 것이라고 판결문을 통해 명확히 밝힌 것이다. [ 광주고등법원 2022. 9. 14. 선고 2018나24881호, 2018나24898호 병합 사건 판결문 90페이지~100페이지, 권용운 일병 사망원인 판단 내용 ]
5.18 진상조사위는 광주시민들 무장의 정당성과 무장 시점에 대한 대법원판결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권용운 일병 사망원인에 대한 광주고등법원의 판결을 외면하고 조사위는 전혀 사실에 맞지 않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 계엄군이 피해자? 오히려 치명적인 진상 왜곡이 담긴 군·경 피해 보고서
3월 25일 ‘5.18 조사위 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 행사 이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별보고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크게 확산됐다.
그런 이유로 3월 27일,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가 ‘개별보고서 폐기’를 주장하면서 기자회견과 함께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5.18진조위 개별보고서 폐기 투쟁선언’ 기자회견. 출처 : 광주MBC 방송캡처 ] |
이후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 제주도의회 3개의 광역의회가 공동성명을 내고 개별보고서 이후에 나올 종합보고서의 초안 공개를 5.18 진상조사위 측에 거듭해서 촉구했다.
[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5.18진조위 개별보고서 폐기 투쟁선언’ 기자회견. 출처 : 광주MBC 방송캡처 ] |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역시 4월 9일, 5.18 조사위 일부 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지역사회의 우려를 전달하며 “보고서를 이대로 채택해서는 안 되고, 이제라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렇게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갑자기 반전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조사위가 4월 이후 새롭게 작성한 ‘종합보고서’ 초안에 그동안 지적된 부분들을 수정 반영한 내용들이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 필자는 이 종합보고서 초안을 5월 17일에 입수하여 그 내용을 확인 )
이는 전적으로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를 비롯한 민변 광주전남 지부, 광주광역시의회 5.18특위, 5.18민주유공자 유족회 등의 노력 덕분이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면, 부실과 왜곡으로 가득한 개별보고서 내용이 종합보고서에도 그대로 관철됐을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나온 종합보고서 초안 역시, 최종 종합보고서에 그대로 반영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조사위원회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 위원 9인 중 보수 측 인사 3인이, 개별보고서 내용과 전혀 다른 부분이 종합보고서 초안에 담겨 있다는 점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사위 개별보고서에는 앞서 언급한 내용 외에, 심지어 ‘3공수여단, 11공수여단은 방어적 작전을 수행했다’, ‘계엄군은 가해자, 광주시민은 피해자라는 흑백논리가 만연해 있다’ 등의 매우 심각하게 왜곡된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직사-13)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작전에 참여한 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사망 상해 등에 관한 피해’보고서( 약칭 ‘군·경 피해 보고서’ ),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발포 경위 보고서가 282 페이지, 암매장 보고서가 55페이지, 무기고 피습보고서가 147페이지에 불과한 반면, 이 ‘군·경 피해 보고서는’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담고 있다.
조사위 활동의 주된 목적과 방점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 출신 부대에 따른 죄의식 및 사회불안 내용의 차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작전에 투입된 주요 부대는 제3공수특전여단, 제7공수특전여단, 제11공수특전여단이었으며, 초기 진압에 투입된 부대는 제7공수특전여단이었다.
제7공수특전여단은 5・18민주화운동 초기에 투입되어 상황을 조기 종결하고자 강경한 진압작전을 펼쳤고 광주시민들과 가장 격렬한 대치 상황을 경험한 부대이다.
이에 반해, 제3 공수특전여단 및 제11공수특전여단 부대원들은 먼저 투입된 제7공수특전여단의 강한 진압작전이 오히려 광주시민들을 너무 자극했다고 판단하여 강경한 진압보다는 방어적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더 많았다.
그로 인해 제3공수특전여단 및 제11공수특전여단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시민들에게 위협 및 부상을 당하거나 동료가 죽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여, 관련한 PTSD 증상을 경험하고 그 고통으로 인해 광주 및 광주시민을 회피하는 증상을 보였다.
-‘(직사-13)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작전에 참여한 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사망 상해등에 관한 피해’ 보고서 496 페이지 中
[ 군경 피해보고 496페이지. ‘3공수, 11공수 방어적 작전’ 규정 부분 ] |
● 국가의 미래와 국민통합을 위한 지속적인 화해와 용서의 노력
군・경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인조사를 진행하면서 계엄군은 가해자, 광주시민은 피해자라는 흑백논리가 만연해 있고,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대해 폭력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중 략 )
계엄군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군인과 경찰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서 참가했다는 사실을 두고 많은 법리적 다툼이 있었지만, 지금은 신군부가 내란죄로 처벌을 받고 부당한 명령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당시의 상황에서 하급제대 지휘관이나 부하들은 그것이 부당한 명령이라는 것도 알 수 없었을 가능성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하는 사명이며, 당연히 수행해야 했던 임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 등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국가의 미래와 국민통합을 위한 지속적인 화해와 용서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된다.
-‘(직사-13)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작전에 참여한 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사망 상해등에 관한 피해’ 보고서 509 페이지, ‘권고’ 中
[ 군경 피해 보고서 509페이지. ‘계엄군은 가해자, 광주시민은 피해자라는 흑백논리가 만연’, ‘당시 계엄군이 부당한 명령이라는 것을 몰랐을 수 있으니 용서가 필요하다’는 내용 ] |
정말 그러한가?
‘3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강경한 진압보다는 방어적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더 많았다’는 주장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계엄군은 가해자, 광주시민은 피해자라는 흑백논리’가 만연해 있고,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대해 폭력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결론은 또 무엇일까?
하급 지휘관이나 부하들은 그것이 부당한 명령이라는 것도 알 수 없었을 가능성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사명이며, 당연히 수행해야 했던 임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 등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국가의 미래와 국민통합을 위한 지속적인 화해와 용서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
이런 주장이 버젓이, ‘5.18 진상규명’ 명의의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온전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채 완결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화해와 용서‘를 먼저 강조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보고서 작성자가 정말 이런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개별보고서 수정 불가’ 입장을 끝까지 주장한다면, 5.18 조사위는 보고서 작성 조사관의 실명을 싣고 보고서와 함께 길이 역사적인 평가와 판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
5.18 조사위는 지난 4년 동안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자 진술 확보 등을 통해 진상규명을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과정에서 비록 해당 조사결과 보고서는 ‘진상규명불능’ 결정이 났지만,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중요한 진술과 증거들을 확보했다.
또 광주시민들의 무장 시점은 5월 21일 13시경 도청 앞 집단발포 이후였다는 사실을 규명한 귀중한 성과도 남겼다.
마찬가지로 비록 뒤늦게나마 어제, 2024년 6월 12일 자로 5.18 당시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입 과정에서 사망한 희생자와 관련하여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최세창 3공수여단장 등 지휘부 6명, 그리고 광주 송암동과 주남마을 일대에서 민간인 16명을 살해한 계엄군 9명을 내란목적 살인죄로 검찰에 고발한 것 역시 중요한 성과이다.
따라서 지금은 이런 성과들을 가리는 5.18 진상조사위 개별보고서가 지닌 오류와 왜곡은 철저히 비판하되, 애써 일군 성과 자체를 부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면 관계상, 그야말로 잔악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3공수, 11공수여단의 참혹한 만행에 대해서는 다음 회차 기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라는 점을 아울러 말씀드린다.
거짓이 진실을 잠시 덮을 수는 있다. 그러나 영원히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