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특집 ] ⑤ 전두환 피의자 신문조서 1회, ‘검찰 수사와 구속은 정치보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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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 5.18 특집 ] ⑤ 전두환 피의자 신문조서 1회, ‘검찰 수사와 구속은 정치보복이다’

- 자신에 대한 수사와 구속은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한 전두환
-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했던 이유
- 12·12 군사쿠데타는 사전 계획 없는, 우발적 충돌일 뿐
- 노태우, 전두환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 1996년 노태우, 12 12 군사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재판정에 출두한 전두환.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한국시사경제저널]

생전에 전두환은 5.18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 1995년 내란 혐의 재판 당시 )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2003년 2월 SBS 인터뷰)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2019년 당시 정의당 부대표가 5․18 책임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

그렇게 평생 단 한 번, 5.18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던 전두환은 2021년 11월 23일 91세 나이로 사망했다. 그때 조선일보는 ‘[사설] 현대사 아픔과 갈등, 굴곡, 논란 안고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을 남겼다.

- 지금 우리 사회는 좌우 진영과 지역, 계층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이 대립과 갈등이 격화된 출발점이 바로 전 전 대통령 집권 과정이었다. 이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 격동의 현대사 중심에 서있던 전 전 대통령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전 전 대통령이 5·18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떠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5·18 희생자 중 한 사람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했다. 이제는 어두웠던 역사의 기억도 그와 함께 떠나보냈으면 한다. 그의 죽음과 함께 우리 사회도 대립과 갈등, 상처를 넘어서는 길로 가기를 바랄 뿐이다. -

그러나 5‧18유족회 등 5월 단체들은 “학살자의 편안한 죽음에 분노한다”는 뜻을 밝혔다. 아무리 미움 대신 용서를 택하려 해도, 그 전제가 되는 ‘진심 어린 사과’가 빠졌기 때문이다.

용서와 비난, 그 어느 쪽을 선택하건 판단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두에 옮긴 단편적인 몇 마디가 아닌, 속마음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를 통해 전두환의 생각 회로를 파악하기로 한다.

1차 자료는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지시로 시작된, 5·18 수사 당시 전두환 피의자 신문조서다.

조사와 신문조서 작성이 3회 이루어졌기에, 본지( 한국시사경제저널 ) 역시 3회에 걸쳐 신문조서 원문 전체를 그대로 싣기로 한다.

[ 1995년 12월 2일 구속되기 직전 전두환, 연희동 자택 골목 성명 발표장면. 출처 : MBC방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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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신문조서( 제1회 ) 1995년 12월 3일 안양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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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 대한 수사와 구속은 ‘정치보복’이라는 전두환

문 : 피의자는 현재 무슨 일로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제가 구속되기 전 저의 변호인인 이양우 변호사로부터 듣기로는, 검찰이 1년 2개월에 걸쳐 조사한 후 기소유예 했던 소위 12·12 사태에 대한 군형법상의 책임을 지고 구속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문 : 지금부터 앞서 말한 12·12 사태의 발생 배경이라든가 진행과정, 그에 따른 피의자의 형사책임 등에 관해 질문하겠는데 순순히 진술에 응하시겠나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12·12 사태에 관한 질문은 어떤 사항에 대해서도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문 : 그렇다면 피의자는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문 : 묵비권을 행사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그저께(1995년 12월 1일) 오후 저의 변호인인 이양우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서 출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주위 사람들과 상의한 결과, 이번 소환이 저에 대한 정치보복을 위해 행해졌다고 판단, 어제(12월 2일) 아침 9시 저희 집 앞에서 국민을 향해 김영삼 대통령의 답변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번 검찰 수사는 전직 대통령인 저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특히 이 사건은 검찰에서 조사하여 저와 노태우 대통령 등 모든 관련자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인데 다시 재론하는 것은 법 집행에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건에 관해서는 저의 입장을 밝히는 답변서를 검찰에 제출한 바 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로 답변에 응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 : 다른 관련자의 진술과 상반되는 부분을 확인하려고 하는 데는 협조하겠는가요.

“이미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저의 입장을 모두 밝혔으므로 협조하지 못하겠습니다.”

문 :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데 다른 이유는 없는가요.

“저는 평생을 명예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인데,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구속하니,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조사에도 응할 수 없는 심정입니다.”

문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진술에 응하시겠나요.

“제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 사건을 맡고 있는 검사 개개인에 대한 불만이 있다거나 검사들이 저를 부당하고 불공평하게 대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번 검찰의 재수사 착수 및 저의 구속이 정치보복일 뿐만 아니라 12월 2일 제가 성명서를 발표한 데 대한 일종의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12 사건 재수사와 5·18 특별법 제정 등 저와 측근들에 대한 일련의 불순한 움직임을 즉각 취소하면 진술에 응하겠습니다.”

문 : 그러면 12·12 사태의 본질적인 내용 이외의 사항에 대하여는 어떻게 하시겠나요.

“그런 사항에 대해서는 순순히 진술에 응하겠습니다.”

문 : 피의자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한 것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요.

“1979년 3월 5일경 보안사령관에 임명되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맡게 된 1980년 4월 14일경까지 재직했습니다.”

문 : 피의자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보안사령관에 임명되었나요.

“1979년 3월 5일 당시 국방부장관이던 노재현 장관에 의해 임명되었습니다. 법률상 임명권자는 국방부장관이지만, 내정 과정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 : 피의자는 누가 발탁했다고 생각하는가요.

“당시 국방부장관이던 노재현 씨가 평소에 박 대통령이 저를 총애하는 것을 알고, 저를 적극 추천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피의자가 보안사령관으로 발탁된 배경은 어떤가요.

“당시 김재규, 차지철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은 등 박 대통령 주변 인물 몇몇 분 사이에 권력암투가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자신의 측근인 문홍구 장군을, 차지철은 자신의 측근인 이재전 경호실 차장을 천거했으며,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저를 추천했는데, 박 대통령이 저를 직접 낙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피의자는 10·26 사건 발생 직후 합수본부장에 취임했는데 결국 피의자의 당시 보직이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12·12, 5·17 등을 거치면서 대통령이 되고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문 : 그러면 피의자의 인생에 있어서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한 것이 그 후의 인생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인가요.

“저는 그것이 인생에 있어 운명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 :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 식당에서 박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 함께 만찬을 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나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저녁 행사를 보안사령관이 알 리가 있는가요.”

문 : 그날 군에 비상이 발령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요.

“직원 격려차 서빙고 분실로 가고 있는 중이었으며, 서빙고 분실에 도착하여 비상이 발령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즉시 국방부로 오라고 전화를 했다고 해서 국방부로 갔습니다.”

문 :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가 육본 B­2 벙커로 소집되었을 때 피의자도 B­2 벙커에 소집되었나요.

“국방부로 갔더니 다른 사람이 육본 벙커로 가라고 하여 그리로 갔습니다.”

문 : 박 대통령이 저격당했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육본 벙커에서 다시 국방부장관실로 장소를 옮겼더니 그곳에서 노재현 장관이 이야기 해주어 알게 됐습니다.”

문 :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김재규를 체포하기 위해 김진기 헌병감이 유인하고 제가 오일랑 중령에게 김재규 체포를 지시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문 : 김계원 비서실장이 대통령 전용차에 신원을 알아 볼 수 없는 시신을 싣고 와 국군서울지구병원 대통령실에 안치시켜 놓고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한 후 돌아가고, 신원 불상의 남자 2명이 시신을 지키고 있으면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 : 보안사 참모장, 감찰실장 등 보안사 간부들이 그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병원장 등 병원 측과 통화했고, 그 결과 코드 원( 대통령 )이 서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이 있는지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 : 고소인들 주장에 의하면 피의자가 즉시 시신을 확인하고 시신을 지키는 자들을 체포하여 추궁했더라면 쉽게 범인을 색출하고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는데,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피의자가 내란을 방조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 12.12 군사쿠데타 직후인 1979년 12월 13일 동아일보 1면 보도.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 ‘김재규범행 관련 혐의’ 등 제목. 출처 : 동아일보 ]

■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했던 이유

문 : 피의자에게 김재규를 체포하라고 누가 언제 지시했으며, 누가 언제 김재규를 실제로 체포했나요.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지시했고, 김진기 헌병감이 김재규를 유인하고 제가 보안사 오일랑 중령에게 김재규 체포를 지시하여 보안사 직원들이 체포했습니다.”

문 : 합동수사본부는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계엄사령관 직속 기구인데 직속상관인 계엄사령관을 연행 조사하려면 그 당시 어떤 절차를 밟았어야 했나요.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제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할 때에도 체포 및 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2~3회에 걸쳐 당시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사전 보고한 바 있습니다.”

문 :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그와 같은 보고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관이어서 그를 체포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므로 시간을 충분히 두고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문 : 피의자는 노재현 장관의 위와 같은 말을 무슨 의미로 받아들였나요.

“저는 정승화 참모총장의 체포 및 조사의 필요성은 승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문 : 피의자는 김재규 등을 조사한 결과 정승화가 김재규의 범행을 방조한 혐의가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상세히 말하십시오.

“궁정동에서 박 대통령 시해사건 발생 당시,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연락을 받고 사건 현장 부근에 가 두 시간 가량이나 있었던 점, 부근에서 박 대통령이 만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수십 발의 총성이 들렸음에도 그 경위와 범인을 확인하지 않았던 점,

김재규가 피 묻은 와이셔츠 바람에 맨발이었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에서 화약 냄새가 났을 터임에도 경위도 알아보지 않고 그 승용차에 탔던 점, 김재규가 준 껌을 먹지 않을 정도로 의심하면서도 그와 행동을 같이 한 점,

육본으로 가는 승용차 속에서 계엄선포 시의 병력 이동 및 배치계획을 김재규와 의논했던 점, 육본에서 임의로 비상소집, 병력이동, 배치 등을 지시한 후 김재규에게 이를 보고했던 점,

수경사령관, 대통령 경호실 차장과 통화하여 차지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재규를 체포하지 않았던 점, 김재규가 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 총장을 이에 참가시키려 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범행에 방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문 : 그러나 계엄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국방부장관에 대한 구두보고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요.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을 체포한다는 것은 고도의 보안성을 요하는 것이었고 저의 생사와도 직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 12·12 군사쿠데타는 사전 계획 없는, 우발적 충돌일 뿐

문 : 최규하 대통령에게는 정승화 총장의 체포 사실을 사전에 보고했나요.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사항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문 :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내란 범행에 동조했다면 10월 26일 당일 국무회의의 대세 파악과 김재규의 원조를 위해 국무회의장에 상주했을 것인데도, 국무위원들이 있던 장소에는 5분 정도 머문 외 육본 벙커 내 상황실에서 상황조치만을 시행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내란 범행을 방조했다면 당시 그렇게 행동했을 리가 없지 않나요.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하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김재규가 국무회의를 거의 주도했습니다.”

문 :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내란 범행 방조를 위해 한 조치 중 가장 적극적인 조치는 김재규와 협의하여 9여단과 20사단을 출동시켰다는 것인 바,

출동명령 직후 정승화 총장이 국민의 혼란을 우려하여 9여단의 출동을 자정 이후로 정정 명령했음에도 사전·사후에 김재규에게 그처럼 중요한 병력이동 명령의 변경에 대해 전혀 상의 내지 통보한 사실이 없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오래된 일이라서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문 : 정승화는 박 대통령 시해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김재규가 범행 후 자신의 승용차 속에서 박 대통령 서거 사실을 알려주어 비로소 알았다는데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 : 정승화는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승용차 속에서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와 대통령 사망으로 인한 혼란 등 수습대책을 의논했을 뿐이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른가요.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문 : 또 정승화는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으로부터 김재규가 박 대통령 살해범이라는 말을 듣고 비로소 김재규가 범인인 줄 알았으며 그 즉시 김재규를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아닌가요.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문 : 합수부 측에서 정승화가 1차 조사를 받을 때, 계엄사령관의 직위를 이용, 위압감을 조성함으로써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고 있는가요.

“당시 정경식 검사가 정승화 총장을 참모총장실로 방문하여 조사했는데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문 : 피의자는 11월 6일 10·26 사건 수사결과 발표시 정승화는 아무 관련이 없고 오히려 사태수습을 적절히 잘했다고 발표한 사실이 있는가요.

“정승화 총장은 당시 서슬이 시퍼런 계엄사령관인데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사실대로 발표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 : 피의자는 12·12 사건의 성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하나요.

“12·12 사건이란 계엄사령관인 정승화의 내란방조 혐의를 합동수사본부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시설이 되어 있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모셔오는 과정에서 정 총장 측의 무력행사로 발생한 우발적인 충돌 사건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문 : 그러면 우발적인 사실일 뿐 합수부측의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란 말인가요.

“결코 사전에 계획한 사건이 아닙니다.”

문 :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에 의하면, 12·12 당일 30경비단에 군 장성들이 미리 모여 있었고, 정승화 총장 측의 수경사령관 장태완 등을 연희동 소재 요정으로 유인해 둔 사실이 인정되는데 일련의 준비상황에 비추어 보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여 군권 찬탈을 시도한 사건이 아닌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에 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문 : 정 총장 연행 보고서의 대통령 재가 문제와 관련하여 재가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요.

“제가 알기로는 재가의 의미는 단순히 회람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서명한다는 의미밖에 없고 그런 전례가 많습니다. 어디까지나 구두보고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 노태우, 전두환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주장

문 : 피의자가 10월 27일 박 대통령에게 부마사태로 인해 어수선한 시국을 수습하는 대책을 건의할 예정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인가요.

“제가 10월 27일 박 대통령에게 그러한 대책을 건의하기 위해 면담 허가 신청을 했는데 10·26 사건이 발생해서 보고 드리지 못해 그 보고 문서를 폐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요 골자는 부마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대통령 심복들 간에 권력암투가 있어서 그런데 어수선한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갈아치워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 : 10월 26일 사건과 관련하여 피의자가 직무유기로 구속한 당시 대통령 경호실 차장 이재전 장군을 정승화 총장이 피의자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석방하여 불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요.

“제가 합수본부장으로 이재전 장군과 당일 경호실 당직 사령 강태춘을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한 사실이 있는데, 주범격인 이재전 장군을 정 총장이 친분이 있다는 관계로 석방하고, 종범격인 강태춘을 그대로 구속한 상태로 두었기 때문에 제가 공정한 사건 처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시정을 건의한 것은 사실입니다.”

문 : 12·12 당시 수개월 안에 정권을 인수할 계획도 수립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 : 12·12 사건 이후 서빙고 분실에서 피의자와 이학봉 중령이 장태완 장군을 만났을 때 피의자가 장 장군에게 장태완은 군단장을, 정 총장은 장관을 시켜주려 하였다고 말한 사실이 있지 않은가요.

“장태완을 만난 사실조차 없습니다.”

문 : 피의자가 12·12 사건을 주동했던 것은 박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 및 군 인사 등과 관련하여 계엄사령관인 정 총장이 피의자 간에 의견대립이 심화되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정 총장은 저의 직속상관으로서 계급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의견 대립이란 있을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문 : 12월 9일 정 총장이 태능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면서 노 장관에게 합수본부장의 경질을 건의했다는 말도 있는데 어떠한지, 위와 같은 정보를 김용휴 국방차관 등을 통해 12월 10일 오전에 입수했다고 하는데 그러한지, 이로 인해 당초 12월 16일로 예정된 거사일을 12월 12일로 앞당겼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인가요.

“저는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문 : 최근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은 실로 엄청난 충격과 분노, 그리고 심한 자괴감에 빠져 12·12와 5·18 사건을 통해 집권한 두 전직 대통령의 집권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두 분의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문 :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 이번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떠한 절차로 처리되기를 바라고 있는가요.

“12·12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검찰에 출석하여 진술했고, 정확한 진상이 규명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검찰이 이미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며 또한 공개된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앞으로 이러한 수사 및 재판 결과가 자료가 되어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요망합니다.”



(계속)



정소앙 발행인
키워드 : 12.12 쿠데타 | 5.18 |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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