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앙 칼럼/계엄 특집] ①계엄 해제, 국회 과반수 이상이면 정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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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앙 칼럼/계엄 특집] ①계엄 해제, 국회 과반수 이상이면 정말 가능할까?

- 5.18 직전, 탱크와 무장병력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던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
-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반응, 박근혜 탄핵 시기 기무사 계엄문건 때와 판박이
- 기무사 계엄문건에 담긴 ‘반국가사범’과 윤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 계엄 가능성, 기무사 계엄문건이 아니라 5.18 전후 계엄 상황부터 살펴봐야
- 계엄령 속 장면1. YWCA 위장 결혼 사건과 짧았던 서울의 봄

[ 10.26 이후 계엄령, 중앙청 앞에 나타난 탱크.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
[한국시사경제저널]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이슈는, 단연 윤석열 정권의 계엄 가능성 논쟁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최고위원 후보가 처음 이 문제를 거론했고, 이후 김민석 최고위원, 박선원 의원, 부승찬 의원, 한민수 의원 등이 논쟁 대열에 합류했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가 한동훈 대표와의 여·야 대표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불붙기 시작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에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에 보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완벽한 독재국가 아닌가?”

그런데 민주당의 이런 주장에 대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과 용산 대통령실은 ‘괴담’, ‘선동’, ‘터무니없는 정치공세’, ‘집단 실성’ 등의 단어들을 동원, 격렬히 반박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9월 12일, 민주당의 ‘계엄 대비법’ 발의 검토를 두고 “있지도 않을 계엄에 대비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외계인에 대비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차라리 외계인 대비법을 만들지 그러느냐”라고 비판했다.

과연 윤석열 정권의 계엄 가능성에 대한 추측은 괴담이고, 외계인 침공에 비교할 만큼 황당한 얘기일까?

이와 관련, 현재 시점에 윤석열 정권이 실제로 계엄령을 선포할 가능성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옳은 시각일 것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는 점, 그리고 민주당 지도부가 확실한 증거라고 판단할 결정적인 한 방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 발 더 나가서 계엄 가능성 원천 차단을 주장, 소위 ‘서울의 봄 4법’을 발의했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선포 전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계엄 선포 요건을 보다 강화, 야당 동의 없는 계엄 선포를 아예 막겠다는 얘기다.

따라서 ‘서울의 봄 4법’ 국회 통과를 놓고 앞으로도 여야간 치열한 대치 전선이 당분간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차례 계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임을 말씀드린다.


■ 5.18 직전, 탱크와 무장병력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던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

[ 79년 10.26 사건 직후 경복궁 사거리에 배치된 탱크와 계엄군.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

계엄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제시하는 핵심적인 반박 근거는 헌법 제77조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①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②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③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중요한 부분은, ④항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그리고 ⑤항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이다.

마찬가지로 계엄법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계엄법 제11조(계엄의 해제)

① 대통령은 제2조 제2항 또는 제3항에 따른 계엄 상황이 평상상태로 회복되거나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

이상, 헌법 제77조와 계엄법 제11조에 규정된 내용으로만 보면 국회 과반수를 넘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인 민주당이 반대하면, 설령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다고 해도 곧바로 해제될 수밖에 없다.

[ 10.26사건 직후 경복궁 근처. 학생들 등하교 길 건널목에 배치된 탱크와 계엄군.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

그런데 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과 당 지도부가 연일 ‘윤석열 정권 계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팩트 체크를 위해 근본적인 질문을 한 번 떠올려보자.

‘계엄 해제, 국회 과반수 이상이면 정말 가능할까?’

‘과반수 이상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를 요구해도, 만약 대통령이나 군이 이를 무시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권한을 짓밟는다면?’

지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현행법(헌법, 계엄법)으로도 충분한데 도대체 왜 ‘서울의봄 4법’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며 계엄설을 ‘괴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군대가 대낮에 무력으로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들을 감금, 계엄요구를 무력화시킨 사례는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80년 5.18 전후 계엄 상황과 기타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 79년 10.26 사건 직후 계엄령. 건물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탱크 -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

엄연히 헌법과 계엄법에는 계엄 해제 요건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 계엄령하에서 탱크와 총칼에 의해 점령된 국회는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무참히 짓밟혔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총 16회 선포됐던 대한민국 계엄사 속 불편한 진실이다.

따라서 국회 과반수 이상이면 당연히 계엄을 해제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혹은 알면서도 일부러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반응, 박근혜 탄핵 시기 기무사 계엄문건 때와 판박이

최순실 국정농단 등으로 박근혜 탄핵론이 국민들 사이에 들불처럼 활활 타오르던 2016년 11월 18일.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정권의 계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압박했다. 그러자 정국에 일대 파문이 일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여소야대 상황이었고,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은 추미애 대표의 계엄설에 대해 펄쩍뛰면서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당시 청와대 인사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즉각적으로 쏟아냈던 반응들은 다음과 같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 : 청와대 춘추관 언론브리핑. “추 대표의 계엄령 준비 운운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제1야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 여의도 당사 기자간담회. “공당의 대표가 이런 식으로 유언비어의 진원지가 되는 정치는 이제 자제돼야 한다. 전혀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를 공식적으로 이렇게 퍼뜨릴 수 있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 페이스북 글. “추 대표님, 우리 헌법을 믿으십시오”라는 제목 글에서 “제1야당의 대표가 혼란을 부추기는 유언비어 재생산에 앞장서다니 개탄할 일이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권한이 있다면 국회는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헌법은 국회의원 과반수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77조에 못박고 있다. 판사 출신 추 대표님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야당 대표로서 진중한 행보를 부탁한다.”

[ 박근혜 탄핵 국면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계엄설에 대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유언비어라고 주장. 출처 : SBS 방송 캡처 ]

그밖에 박근혜 팬클럽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심지어, 추미애 대표를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2018년 7월,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군인권센터가 계엄 포고문, 국회의원 체포계획 등이 담긴 기무사 계엄문건을 공개·폭로하면서 추미애 대표의 박근혜 정권 계엄 준비주장이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자 문재인 정권으로 교체된 이후 2018년 8월 3일.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기무사 계엄문건 유출을 이유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송영무 국방부장관, 이석구 국군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공무상 기밀누설,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청와대 대변인이나 집권 여당 대표·원내대표조차 알 수 없도록, 기무사를 중심으로 극비리에 계엄안이 준비됐던 2016년. 그러니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여당 지도부의 펄쩍 뛰는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보이는 반응은, 과거 박근혜 탄핵 시기 계엄설 때와 거의 판박이처럼 닮은 꼴이다.


■ 기무사 계엄문건에 담긴 ‘반국가사범’과 윤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현재 윤석열 정권 계엄가능성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제시하고 있는 핵심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반복한 ‘반국가세력’ 언급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이 지난 9월 7일 유투브 영상. ‘김민석의 5분 최고특강을 시작합니다. 첫 시리즈는 ‘계엄‘입니다’를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 법률에 없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유일하게 법률에 나오는 용어는 ‘반국가단체’)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언급한 횟수는 취임 이후 8회나 된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반국가세력’의 범주에는 이종찬 광복회장,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대표 등을 비롯해, 김건희 여사나 후쿠시마 오염수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SNS를 통해 주고받는 모든 국민들이 포함되어 계엄 시에는 척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김민석 최고위원의 분석이다.

[ 윤석열 대통령 ‘반국가세력’ 언급 현황. 출처 : 김민석 TV ]

그런데 2017년 기무사 계엄문건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국가세력’과 거의 비슷한 ‘반국가사범’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⑳ 계엄법 위반자 사법처리’에 ‘反국가사범 등 주요 사범은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에서 직접 처리, 기타 사범은 헌병·경찰·국정원 등 기존 수사기관에서 수사’라는 내용이다.

[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계엄문건 中 ‘계엄법 위반자 사법처리’ 부분 ]

따라서 ‘반국가세력’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지, 윤 대통령 스스로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은 야권을 향해 협치는커녕 대화상대가 아니라 ‘적’으로 규정하는 듯한 태도를 여러 차례 보여왔다. 그런 의도가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로 반복 표현됐고, 기무사 계엄문건에는 ‘반국가사범’이라는 매우 유사한 표현과 함께 사법처리 대상으로 설정돼 있다.

때문에 민주당의 계엄에 대한 우려가 마냥 괴담이나 망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런데 과연 계엄령하에서 군대가 전직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를 사법처리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설마?’라며 의문을 갖겠지만,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김민석 최고위원이 계엄설의 두 번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 김용현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현 국방장관)과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이 회동했다는 점과 비상시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행안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이 충암고 출신인데다 방첩사령관 역시 충암고 출신이라는 점 역시 의문을 키우는 대목이다.

또 국회 국방위 민주당 소속 박선원 의원 경우, 국방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충암파’ 대신 ‘용현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군 인사를 좌지우지할 국방장관에 윤석열 대통령 고교 선배인 김용현 전 경호처장을 임명, 계엄 대비용 윤석열 대통령 군 친정체제 구축 시도를 의심한 내용이다.


■ 계엄 가능성, 기무사 계엄문건이 아니라 5.18 전후 계엄 상황부터 살펴봐야

이와 관련해서 우선 주목해서 봐야 할 사건은, 과거 마지막 계엄령이었던 5.18 전후 계엄 상황이다.

현재 김민석 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정권 계엄 가능성의 근거로 박근혜 탄핵 당시 ‘기무사 계엄문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5.18 전후 계엄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때 상황을 먼저 살펴봐야 하고,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무사 계엄문건은 실행되지 못한, 그저 준비 단계 문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5.18 전후 계엄 때는 ‘국회의원 과반수 계엄 해제 요구권’이 당시 신군부 병력에 의해 무력화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기무사 계엄문건이 거의 모방하다시피 한 구체적인 참고 사례가 바로, 5.18 전후 계엄 상황이기 때문이다.


■ 계엄령 속 장면1. YWCA 위장 결혼 사건과 짧았던 서울의 봄

권력은 비정했다. 그렇게 충성스럽게 보였던 차지철 경호실장도 피를 흘리는 대통령을 놔두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독재 정권을 에워싸고 있던 박정희의 사도들은 홀연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당당했던 18년의 철권통치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독재 정치는 이처럼 허망하다. 독재자가 죽으면 남는 것이 없다. 영화는 뜬구름이요 권력도 물거품이었다. 유신 체제를 ‘구국의 영단’이라 치켜세웠던 많은 정치인, 학자, 고위 관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유신 체제는 저잣거리에 던져져 짓밟혔을 뿐이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도서출판 삼인) 1권 381 페이지, ‘궁정동의 총성’ 중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벌어졌던 마지막 계엄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 사망하게 한 1979년 10.26 사건 직후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 440일 동안 지속됐던 5.18 전후 계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지적한 것처럼, 박정희가 사망하자 18년 장기 독재가 무너지면서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

심지어 박정희를 사살한 김재규를 민주의사로 치켜세우는 분위기까지 번지고 있었다. 10.26 사건 직후, 야권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미국 언론 「뉴스위크」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재규를 민주주의의 영웅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는 쿠데타나 암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이뤄야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79년 11월 10일,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먼저 선출하고, 그 이후 민의를 수렴해서 개헌을 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던 것.

그러자 대학 제적생들 중심으로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다 투옥됐던 ‘민주청년협의회(민청)’ 청년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다시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만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는 결의를 했던 것.

그러나 계엄 하에서 집회를 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1979년 11월 24일 서울 명동 YWCA 회관에서 재야 세력이 결집, 결혼식을 가장한 집회를 개최했다.

신랑, 신부는 연세대학교 복학생 홍성엽과 윤정민. 홍성엽은 실존 인물이었지만 윤정민은 그해 6월 15일 세상을 떠난 윤형중 신부의 성에 ‘민주주의 정부’에서 정과 민이라는 글자를 따서 이름 지은 가상의 인물이었다.

당시 행사장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은 윤보선 전 대통령과 재야지도자 함석헌,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양순직, 박종태 그리고 재야인사 임채정, 문동환, 김상현, 한명숙, 백기완, 최열 등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성명서 낭독과 함께 크게 구호가 제창됐다. 짧은 순간 박수 소리와 함성이 식장 안에 크게 울려 퍼졌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윤보선과 함석헌을 미행하던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행사장이 아수라장이 됐고, 대거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참석인원 140여 명 전원을 체포하고 말았던 것이다.

[ 79년 YWCA 위장결혼 집회 사건으로 보안사 조사를 받은 윤보선 전 대통령.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

[ 79년 YWCA 위장결혼 집회 사건으로 보안사 조사를 받은 재야지도자 함석헌 -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

고령이었던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석헌 옹은 서면조사에 그쳤지만, 핵심 주동 인사 14명은 용산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1월 28일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기자들이 그 자리에서 김대중에 대한 연금이 언제 풀리는지 질문을 하자 정승화는 이런 답변을 했다.

“모른다. 정부가 하는 일이다. 전쟁이 나면 군인이 적을 막아야 하는데 전쟁을 하는 군인이 과오든 어쨌든 공산주의 활동을 한 일이 있는 사람은 장교가 될 수 없듯이, 국가 원수도 미심쩍은 사람은 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후 정승화는 언론사 간부들을 세 차례나 육군본부로 초청, 김대중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자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글라이스틴(William Gleysteen)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이야기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발표했다.

“김대중 씨에 대한 미 대사관의 견해는 계엄사령부와 전혀 다르다. 우리는 김대중 씨를 신뢰할 수 있는 민주주의자이며, 공산주의 반대론자라고 생각한다. 만약 군 당국이 그러한 왜곡된 견해를 공표한다면 우리도 미국의 견해를 공표할 것이다.” (김대중 자서전 1. 387~388 페이지)

이후 헌법개정을 원한 야당과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유신헌법에 의해 12월 6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다음 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당시 민주주의와 국민적 저항을 억누르던 수단으로 4년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됐던 ‘긴급조치 9호’를 해제했다. 그러자 자택에 연금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금에서 풀려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짧았던 ‘서울의 봄’이 시작된 것이다.





- 덧붙이는 말

♣ 저희 한국시사경제저널은 2024년 3월 9일, 김건희 여사 디올백 전달자인 최재영 목사 인터뷰를 창간기념으로 내보내면서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9월 25일 현재 누적 방문객 숫자가 PC와 모바일을 합쳐서 23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 말씀 올립니다.

♣ ‘계엄’은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매우 어두운 발자국을 남긴 무거운 주제입니다. 따라서 ‘계엄 특집기사’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충실하고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분석, 정리가 필수입니다.

5.18 특집 7회차 기사 이후, 이번 기사를 올리기까지 한 달 이상 시간이 소요된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6월부터 5.18 특집기사를 싣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던 시점, 여러 중요한 현안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18 특집만 계속 내보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시의성(時宜性) 문제가 제기 되었습니다.

결론은 이미 진상규명을 위한 시간이 44년이나 경과한 만큼, ‘조금은 긴 호흡으로 계속 다뤄나간다’입니다.

♣ 시대적 진실을 향한 중단 없는 노력. 좋은 기사는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있을 때 지속 가능합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정소앙 발행인
키워드 : YWCA 위장결혼 | 계엄해제 | 기무사 계엄문건 | 충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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